[데스크 칼럼] 부끄러운 사회, 암흑속 폐지수거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sh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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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속 폐지수거! 너무 위험해요!”

 

폐지수거 리어카를 끌고 무단횡단과 역주행을 하는 어르신들을 교통사고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경찰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계도의 효과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둑한 새벽, 허리가 45도나 굽은 박 할아버지는 일찍 집을 나와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수거한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는 날에는 다른 어르신들이 먼저 수거를 해가는 탓에 항상 부지런하게 어둑한 새벽길을 다닌다. 수레에 가득 폐지 등을 싣고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질주하는 차량들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리어카를 끌고 간다.

 

누구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을 졸이거나, 때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경찰과 자치단체들은 폐지수거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여 왔다. 눈에 잘 띄는 형광색의 조끼를 나눠주기도 했다. 방한모와 야광반사기를 리어카에 달아드려 운전자의 시야에 포착될 수 있도록 해주려 애쓰고 있다.

 

법규상 리어카는 자동차가 아니므로 차도로 다닐 수 없다. 경찰청은 리어카의 차도 역주행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은 “어떻게 그런 노인들께 딱지를 끊나요”라고 반발한다. 현실적으로는 계도 외엔 할 수 없고, 이는 폐지수거 노인들의 교통사고를 방치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경찰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필자의 지인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3년째 리어카를 끌고 야간 폐지수거를 다니시는 팔순의 부친께 수거중단을 설득하느라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이 경우는 매우 해피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은 생계를 위해 이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 2015년 부천시에서 폐지수거 노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일제조사 결과는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부천시 36개 동 주민자치센터별로 폐지수거 노인 469명을 대상으로 행한 조사결과, 이들 중 42%는 월수입 15만원 이하, 79%는 수입이 채 30만원도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에게 힘든 것은 금전적인 상황뿐이 아니다. 노인의 경우 반사 신경이 느려 각종 안전사고, 교통사고에 취약하다. 우울증도 매우 많았다.

 

김해지역 복지관련 단체들이 지난 2014년 지역 내 폐지 줍는 노인 199명과 수거업소 20곳 등 모두 25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폐지 줍는 노인 중 50.8%가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42.7%는 함께 어울리는 이웃이나 친구가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전략경영학회 Enactus 학생들은 ‘리어카를 광고 플랫폼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지난해 11월 노인들의 금전문제, 안전문제, 사회적 인식문제를 해소하고자 리어카 양옆에 광고판을 달았다. 직접 광고주를 구해 수익을 폐지수거 노인들에게 분배하는 모델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학생들의 노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는 폐지수거 노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 폐지수거 노인들이 도로에서 숨지는 사고는 이제 없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하늘에서 대한민국을 내려다본다면 “노인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엉망인 사회”라고 지적할 것 같다. 부끄럽다.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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