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CCTV의 원조, 낮과 밤의 새와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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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주주의의 맏형이라 자처하는 미국에서 대선 전부터 달아오른 대통령 당선자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 우리나라에서는 탄핵이라는 극단적 처방론까지 입에 오르내렸다. 그 많은 기자가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거침없고 자유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화가 부럽기만 했다. 기자들과 대통령의 만남. 누가 거짓이고 누가 진실인지를 알아보게 만든 유리창 같았다.

 

여기에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빗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생물을 주인공으로 한 살아 있는 CCTV의 원조격인 이 속담은 소름끼치도록 명쾌하고 적확한 표현이다. 그 먼 옛날, 아무런 측정 장비나 과학적 수단이 없었음에도 주·야간에 발생하는 대기의 밀도 차이에 따른 소리 흐름의 변화를 어떻게 알아채고 그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동물들까지 이리도 잘 빗대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듣는 소리는 낮에는 하늘을 향해 위로 퍼지는 경향을 보이고 밤에는 지면을 따라 흐르는 특성이 강하다. 이것은 정밀한 측정 기기나 분석 장비가 없다면 말로는 표현조차 어려웠을 자연이 만든 물리학적 현상임에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낸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그렇게 이동하는 특성을 가진 소리를 제일 잘 듣는 것으로 새와 쥐를 내세운 것은 지금의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도 가장 합리적이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도 이 같은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새들은 천적을 피해 나뭇가지 등 높은 곳에 앉아 생활하는 특성이 강하다. 그 높이까지 마치 소리를 들어 올리듯 올려 보내는 것은 자연이 만든 현상이다. 더욱이 새들은 두개골이 작고 귀가 거의 외부에 노출돼 있다시피 해 소리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그 어떤 동물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쥐도 비슷해, 땅속에 숨어 살기를 좋아하는 특성상 작은 몸으로 세상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 미세한 소리 정보라도 목숨처럼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소리에 민감한 동물이란 뜻이다.

 

모든 소리는 모든 생물과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자연 속에서의 소리는 가둘 수도 없고 흘러가는 길을 막아설 수도 없다. 어디론가 몰래 숨어들거나 원래보다 더 커지거나 없던 것이 더해져 왜곡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 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마음대로 숨기거나 왜곡시키기며 흘러갈 방향도 정하고 거기에 양념처럼 자신의 감정까지 덧씌워져 가공식품 뺨치게 변모하기 일쑤다. 그래서일까. 귀로 들은 소리가 입으로 나갈 때, 우리는 사람 됨됨이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귀로 들은 소리를 교묘하게 왜곡시킬 줄 아는 것, 인간만이 가진 얄미운 재능인 듯하다.

 

미국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요즘 쥐와 새는 똑바로 들었지만, 자신들조차 스스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얼마나 심하게 가공했는지 모르는 현장을 매일같이 신문, TV 등 ‘낮말 밤말 전달기’를 통해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은 왜 자신을 만난 사람들이 쥐나 새보다 더 무서운 ‘살아있는 신형CCTV’임을 모르고 있는 걸까. 진정 그 이유를 모른다면 새와 쥐를 모아 놓고 지내라. 그들은 CCTV내용을 조작하지 않기에 안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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