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얼마 남지 않은 학력고사를 대비한 지리 수업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께서는 매시간 엄청나게 많은 기출문제를 복사해 오셔서 배경 설명보다는 문제풀이에 주안점을 두셨다. 어느 날 내가 선생님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없이 문제만 풀어도 될까요”하고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그날 “양이 넘치면 질로 전환이 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 내게 늘 풀지 못한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과연 양이 넘치면 질로 전환될까.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나타내는 주요한 요소인 논문의 평가척도는 작성된 논문을 다른 연구자들이 얼마나 인용하였는지를 나타내는 피인용지수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우수한 학술지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게재된 논문은 피인용지수가 매우 높다. 그러나 그 반대인 경우는 당연히 피인용지수가 낮다.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노력에 비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낮다는 것인데 피인용지수가 낮은 논문을 아무리 많이 써야 피인용지수가 높은 논문과 비교될 수 없다. 또한 피인용지수가 낮은 논문만 쓰는데 익숙한 연구자는 이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피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기 어렵다. 한편 우리나라가 늘 관심을 갖는 외래 관광객의 수는 양적으로 매년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관광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최근 중국 관광객이 감소함에 따라 무슬림 관광객에 눈을 돌리고 있는 정책은 충분한 고민이 뒷받침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영국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의 한국관에 가보면 한국이 유구한 역사와 독자적인 언어 그리고 명확한 국가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전시품의 면면만 놓고 본다면 과연 그러한지 부끄럽다. 우리가 항상 자랑하는 정보기술 강국의 면모로써 인터넷 속도는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한국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본다면 개발자들이 사용자의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하고 있는지 원망스럽다. 암기력과 빠른 계산력이 논리적인 사고보다 앞서는 우리의 수학, 과학 수업이 앞으로 닥쳐올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양으로 승부하는데 익숙했었고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더 글로벌해지는 환경에서 더 이상 양에 안주해서는 우리가 염원하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양을 질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해오던 관습적인 많은 부분의 일들을 과감히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양은 아무리 늘어도 절대 질로 전환될 수 없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도 많은 성취를 이뤘으며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으로도 잘 살 수 있었던 유럽이 요즘 내홍을 겪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이 질 관리에 눈을 떴지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우리끼리만 어울려 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질 관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일보 뉴스 댓글은 이용자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건전한 여론 형성과 원활한 이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은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경기일보 댓글 삭제 기준
1. 기사 내용이나 주제와 무관한 글
2. 특정 기관이나 상품을 광고·홍보하기 위한 글
3. 불량한, 또는 저속한 언어를 사용한 글
4. 타인에 대한 모욕, 비방, 비난 등이 포함된 글
5. 읽는 이로 하여금 수치심, 공포감,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하는 글
6. 타인을 사칭하거나 아이디 도용, 차용 등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침해한 글
위의 내용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불법적인 내용이거나 공익에 반하는 경우,
작성자의 동의없이 선 삭제조치 됩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