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투트랙 정책은 우리의 전 정부들도 시도하던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수면 하에 잠재하던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일 측의 망언 등을 계기로 부상하고 국민의 감정이 분출되면서 양국관계가 경색, 일본과의 실질적인 협력 관계가 동결되는 양상이 반복돼 그동안 효율적이지 못했다. 투트랙 정책의 진전을 위해서는 과거사 해결과 실질적인 협력관계의 증진 노력을 균형되게 가져가는 정부와 국민의 냉철한(cool)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과의 관계 재설정을 향한 우리의 냉철한 접근은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통찰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일본 내 우경정권의 영원성이다. 일본의 근대화를 추동해낸 메이지유신 이념에 정치적 뿌리를 둔 우경세력은 전가 보도인 부국강병 명분하에 영구히 집권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양심세력은 과거사를 객관적 시각에서 보고 있으나, 일본사회의 주류가 돼 집권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시대에 관한 일본의 우경적 역사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를 망각한 것이 아니라 본심으로는 신국의 영광된 역사로 보기에 한국의 식민지배에 관한 반성과 사과는 진정성이 없는 통과 의례에 그친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인 바, 이는 일본의 본색과 세계관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임을 우리가 꿰뚫어 보는 것이 좋다.
둘째, 일본인의 윤리관이다. 1899년 ‘무사도란 무엇인가(Bushido, the Soul of Japan)’를 집필한 ‘니토베 이나조’는 서양 법학자가 일본 학교에서 종교교육이 부재해 학생들에게 도덕교육을 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함을 계기로 자신에게 선악의 관념을 일깨워준 것이 무사도이며 봉건제도와 무사도에 대해 모르고서는 현대 일본의 도덕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사회는 절대자인 신 앞에 선 인간의 죄의 문화가 아니라 행운의 기원 의식은 있으나 속죄 의식이 없는 수치의 문화라고 지적한다. 수치의 문화는 도덕의 기본체계를 이루는 원동력이 죄의 자각이 아니라 치욕감이며 수치를 면하기 위해 선행을 한다.
이와 같은 일본적인 우경성과 도덕률 전통은 인류 공통의 가치를 폭넓게 공유치 못하는 폐쇄성에 비추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의 형상이 될 수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은 어느 하루에 해결되지 않으며 장구한 시간이 소요될 지난한 과제라고 본다면, 우리가 한일 관계의 재설정에 대해 냉철과 금도있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더하여, 우리 사회 발전을 통해 일본인들이 우리를 진정한 존중감을 가지고 보도록 만들 때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사과도 보다 더 빨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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