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잇는 100년 기업] 의정부 제일시장 수덕신발

40년 이어온 경기북부 터줏대감
“신발 사고팔며 웃음꽃 한다발… 이곳은 내 삶의 전부”

제목 없음-1 사본.jpg
▲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40년째 대를 이어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수덕신발 이상백 대표가 최신 유행하는 수제화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형민기자
사람 냄새 가득한 정겨운 전통시장 한 편에 마련된 한 신발가게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딱 봐도 연식이 좀 돼 보이는 이 집에서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부터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 청년까지…손님들이 주인과 서스름 없는 이야기를 왁자지껄 나누고 있다. 

신발을 사고파는 곳인지 아니면 평소 못다 한 안부를 주고받으러 왔는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푸근하다. 정이 넘치는 이곳은 의정부 제일시장에 있는 ‘수덕신발’의 일상 중 한 장면이다.

최근 유행하는 신발 유형부터 고급소재의 남성용 구두, 최신 유행의 여성화는 물론 마음에 드는 신발이 없다면 손수 주문ㆍ제작까지 해주는 수덕신발. 점포를 넘어 지역의 소통 창구로 자리 매김 한 이곳에 판매 그 이상의 의미를 주겠다는, 큰 포부를 품은 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100년 가업을 만들겠다고, 디딤돌을 밟은 대표 이상백씨(47)가 바로 주인공이다.

■가업(家業) 전도사

1978년 문을 연 수덕신발은 벌써 40년이 됐다. 의정부 제일시장은 경기북부지역에서 손꼽히는 대표시장인데 여기서 40년이면 동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의미겠다. 아마 수덕신발이 ‘경기북부 터줏대감’이란 수식어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 이 대표에게 수덕신발이 있는 시장은 태어난 고향 그 이상이자 인생 터전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 따라 이곳 가게와 시장에 눌러 살다시피 했다. 이곳의 40년은 나의 삶과 같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님에게 적합한 신발이 어떤 것인지, 좋은 신발과 나쁜 신발의 차이 등 20살에 이미 신발의 전반을 바라보는 눈이 트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처음 가업을 이어받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성인이 되고 보니 ‘나도 내 또래 친구나 형ㆍ누나 뻘 되는 이들에게 신발을 팔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게 신발을 한 켤레, 두 켤레 팔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회상하듯 말했다.

 

인터뷰하러 온 기자 앞에 그의 눈길이 가장 먼저 간 곳은 기자가 신은 구두였다. 낡고 오래돼 보인다며 어디를 어떻게 손봐야 할지 조언해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신발맨’ 다웠다. 아마 삶을 신발과 함께 한 그가 가진 특이한 직업병이겠다. 이처럼 이곳은 단순히 판매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 가게와 차별성을 갖는다. 수덕신발의 주 품목은 ‘수제화’이기 때문에 재료 선정부터 주문제작은 물론 신발 수선 등 전반에 대해 다룬다. 그만큼 신발에 대한 안목까지 키워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목 없음-2 사본.JPG
그런 그는 가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자신이 가업을 통해 이같이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장점을 잘 아는데 이제는 이를 남에게 당당히 권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단골손님, 납품업체 목록 등 그동안 하나의 점포가 굴러가는 데 있어 있던 시스템과 노하우는 물론 판매품목을 자세히 알 줄 아는 안목 등 보이지 않는 모든 가치를 통째로 전수받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 불필요한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부모가 쌓아 온 신발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를 습득했다고 덧붙였다. 사업 초반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옆에서 가장 큰 등대 역할을 해온 이가 신발업계 대 선배였던 그의 부모였다. 이는 최근 젊은 층에서 창업의 일환으로 자영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염두해 하는 조언이기도 했다.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사업 아이템을 멀리서 찾지 말고 부모나 친척 등 내 주변에서 찾아보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전통시장, 창업의 새로운 발판

그런 이상백 대표가 또 다른 중책을 맡고 있다. 제일시장 상인회 회장직이다. 경기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됐고 전통이 있다는 상징의 이곳에 대표를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압박이겠는데, 시장이 현재 처한 위기로 인해 머릿속에는 온통 이를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지만 가득하다. 그는 “처음 부모님 따라 가게에 있었을 때는 전통시장 시대였다. 

우리 가게만 하더라도 공산품이 많지도 않은데다 ‘구매=시장’이란 등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어 시장은 항상 활기가 넘쳤다”며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정 반대다. 당장 인근에 대형 공룡 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고 인근 양주에 대기업 식자재 마트가 들어서는 등 시장을 위협하는 요소가 계속해 생겨나고 있어서다”고 설명했다.

 

당장 수덕신발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수덕신발이 수제화를 주문하는 공장은 대기업 등 이름있는 브랜드에 같은 품질의 신발을 공급하는 곳임에도 사람들 인식에는 ‘품질은 그래도 백화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품질만으로 경쟁하기에 경쟁자들은 골리앗인데다 너무 많다. 이에 “시장을 살리는 일은 이제 나와 내 주변 상인들의 생존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결국 지역경제를 구성하는 이들의 가정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가업 전도사이자 이제는 시장공동체의 대표로서 이 대표는 창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시장을 기회의 땅이라고 소개한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간 정부에서 각종 지원을 핀 탓에 이제는 현대화된 전통시장이 특색을 갖춰져 있기도 해서다. 

제목 없음-1 사본.jpg
그는 “시장 안에는 나와 같이 한 분야에서 몸담아 노하우가 가득한 이들이 지천에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할 이들이 없어 안타까워할 정도”라며 “시장 활성화를 통해 창업이 새로운 형태의 가업으로 계승될 수 있게끔 적극적인 지원을 하려 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즉 혈육 중심이 아닌 관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가업을 그리는 것이다.

 

과거처럼 가업이 굳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더라도 시장에서 창업을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존 상인이 합심해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정착에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제일시장은 실내 점포 내 냉ㆍ난방기 설치, 주차장 운영 등 시설보수에 나서는 한편 먹거리 야시장 개최 등 손님의 발길을 끌어올 다양한 정책을 펴면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우리나라에 가업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풀뿌리처럼 흩어져 있는 전통시장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ㆍ원래의 거주자가 상권 활성화로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게 되는 현상) 등 최근 자영업자들의 하루하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더욱이 서울 연남동, 이태원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 사람들이 최근 많이 몰려드는 ‘핫 플레이스’의 다음 종착지는 80~90년대 우리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장이라고 강조하는 이 대표. 전통시장의 부흥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가업을 일으키겠다는 그의 포부에 10년 후 수덕신발이 있는 이곳을 신(新)상권으로 그려본다.

의정부=조철오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