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기를 인정하며 시작, 갈등은 남을 인정하면 해결”
갈등이 끊이지 않는 정치권은 물론, 오래도록 극복되지 않는 남북갈등과 지역갈등, 여기에 최근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갑과 을의 갈등, 세대 간 갈등이 폭발 직전까지 다다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은 없을까? 경기일보는 다양한 갈등 해결 방법과 삶의 가치 등에 대해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 스님에게 들어봤다.
일면 스님은 조계종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으로 장기기증 확대에 앞장서고 있으며, ‘자비의 전화’ 운영, 13년 동안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합동 결혼식을 무료로 올려주는 등 부처의 자비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양주시에 위치한 불암사에서 만난 일면 스님은 “행복은 자기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면 행동도 달라질 것”이라며 “자신을 귀하게 여기면 남도 귀하게 된다. 우리 안에 있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에 주례로 참석해 잔잔한 화제가 됐다.이주노동자들의합동결혼식에 주례를 서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불암사가 의정부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송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난 2005년부터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소외계층이나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무료로 합동결혼식을 거행하고 내가 주례를 맡고 있다. 13년간 80여 쌍의 결혼식을 진행했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 종교가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베푸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자비를 가장 소중한 가르침으로 품고 있다. 돈이 있고 시간을 내야 보시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재물을 들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위하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다.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안시(眼施), 늘 웃는 화안시(和顔施), 부드럽고 공손한 말투인 언사시(言辭施), 남의 짐을 들어주거나 행동으로 남을 돕는 신시(身施), 따뜻한 마음을 내는 심시(心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上座施), 식사를 대접하거나 쉴 곳을 마련해주는 방사시(房舍施)가 그것이다. 무료 합동결혼식도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닌 이분들과 함께 웃어주고 손잡아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아해 줘 내가 오히려 감사하고 갈 때마다 배우고 온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장기기증 문화조성에 앞장서고 있는데.
나 역시 간경화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지난 2000년 간이식 수술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만약 당시 나에게 간을 기증해 준 22살의 뇌사자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장기기증은 더불어 살아가는 징표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피를 나눈다는 뜻이다. 장기기증은 곧 피를 나누는 부모 자식 간 혹은 형제간 인연을 맺는다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인가. 만약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피를 나눈 혈연 사이처럼 상대방을 위한다면 갈등이나 혼란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는 자살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해주는지.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사실에 종교지도자로 참으로 큰 책임감을 느낀다.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고 강조하는 것이 종교인데 우리 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반성할 때가 많다.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물론 성품이나 가정환경 등 지극히 개인적 요소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러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공업(共業)이라고 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경제적 불평등, 환경 문제, 세대 갈등, 교육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 중 가장 큰문제로 ‘저출산’문제를 꼽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저출산에 따른 미래사회에 재앙이 우려되고 있는 시점인데,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인연에 따른 것이다. 인위적으로 조절해서는 안 된다. 저출산은 사회적 과제 이전에 생명에 대한 요즘 젊은 분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없다고 결혼을 기피하고 키우기 힘들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돈이 많고 사회가 양육한다고 해서 아이를 낳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귀하게 여기지 않고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적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사회도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주택과 의료, 교육 문제를 사회가 해결돼야 한다. 보육시설 확충이나 임신과 출산한 아내와 남편에 대한 배려 등 출산과 직접적 연관있는 것에 대한 지원 등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다. 심지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출가자 집단에도 무수히 많은 갈등이 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도 제자들이 편을 나눠 싸운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갈등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문제는 갈등의 생성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나는 옳다(是), 너는 그르다(非)고 나누고 분별하는 데서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사실은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냥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 무엇인가 인연이 생겨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냥 산(山)이고 물(水) 일 뿐이지 산이 옳고 물이 그르다고 하면 이게 서로 합의가 되겠는가. 이 엄연한 사실만 서로 인정하면 갈등이 생길 까닭이 없다.
-내년이면 ‘경기’라는 이름이 생긴지 1천년이 된다.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이기도 한 경기도는 새로운 천년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까.
경기(京畿)라는 말은 왕이 있는 왕도를 보호하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불암사 역시 왕이 있는 한양을 보호하고 왕실과 백성의 안위를 지키는 사찰로 지정됐으니 경기도와 불암사는 같은 유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세조 때 한양 외부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찰을 뽑는데 남쪽은 삼막사, 북쪽은 승가사, 서쪽은 진관사, 그리고 동쪽은 불암사가 뽑혔다.
이 유래 안에 경기도의 미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왕실이 무엇인가. 왕조시대에는 주인이다. 오늘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평안케 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중앙과 지방 정부도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특히 경기도가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국민이 평안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아야 하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야 하며, 자식을 키우는데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지자체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으며, 서울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부심을 갖는다면 천 년 전 고려시대에 ‘경기’라는 지명이 생기고 지금까지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켜왔듯이 앞으로의 천 년도 한국을 이끄는 중심 지자체로 위상을 굳건히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취업난에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 분들,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행복수치는 낮은 중장년층 등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면서 이렇게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말뜻은 하늘 아래 하늘 위 인간이 가장 소중하니 세상의 모든 고(苦)를 떨치고 평안케 하겠다는, 부처님 탄생 선언이다. 이 말 속에 부처님 가르침과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 들어 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 즉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종, 피부색, 종교, 신분, 내 아버지가 누구이며, 어느 학교를 나왔고, 내 살아온 이력이 무엇이든, 지금 무엇을 하고 무슨 옷을 입고 어느 아파트에 살든지 관계없이 누구나 그냥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도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래서 ‘난 죽어야 해’ ‘난 이렇게 살아도 싸’ ‘난 욕 먹어도 돼’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한다. 자기 비하가 자신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고 삶을 어렵게 한다. 우선 자신을 비하하는 그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면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귀한 행동을 하고 실천을 한다. 행복은 자기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일면 스님·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은…
1959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명허화상을 은사로 입산
1968년 경남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79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 졸업
1988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제 9, 10, 11, 12, 13대 중앙종회의원
1993년 학교법인 광동학원(광동중ㆍ고, 의광고)이사장
2005년 대한불교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초대교구장
2005년 사단법인 생명나눔 실천본부 이사장
2012년 대한불교조계종 호계원 호계원장 역임
2015년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38대 이사장 역임
2015년 로스엔젤레스 동국대학교(DULA)이사장 역임
대담 =이선호 문화부장
정리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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