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남북 공감대가 우선… 100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국전쟁 때 미군 하우스 보이를 하던 이 소년은 목사가 되고 난 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기독교 복음 전파라는 큰 뜻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ㆍ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다.
최근 김장환 이사장은 종교계 원로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일보 창간 29주년을 맞아 김장환 이사장으로부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김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국내·외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고 희망이 있는 나라”라며 인터뷰 내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통합을 강조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성과를 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대북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며 “통일은 10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서로 왕래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보수 원로 목사가 국익을 위해 진보 대통령을 도왔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등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는데 한미 정상회담을 돕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우연히 됐다고 보는데 하나님의 배경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1976년 6월 카터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과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카터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서 1차 회담에서 팽팽히 맞섰다.
당시 저는 카터 대통령이 침례교 집사인 데다 조지아 지사 때 몇 차례 기도해 준 게 계기가 돼 가까워졌다. 그 인연으로 2차 회담을 앞두고 여의도 침례교회로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박 대통령 칭찬을 많이 했다. 박 대통령은 애국자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틀어진 관계를 중재할 수 있었다.
저는 지금도 매년 1천 달러씩 카터 센터에 기부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침례교 세계연맹 회장을 할 때 2005년 영국 버밍엄에서 대회를 했는데 카터 대통령 내외를 초청해 강연도 했고 지금도 심심찮게 편지로 왕래하고 있다. 내년도에는 어린이 합창단을 데리고 카터 대통령이 주일학교 교사로 있는 침례교회에 가서 찬양을 해주기로 했다.
이 같은 인연이 이어지면서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펜스 부통령 간 연결고리가 됐다.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종교적 멘토로 알려진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가 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흥남철수 당시 부모님이 내려왔고 거제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간에서 역할을 해줬다.
-북한이 ICBM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일-북·중·러 관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는지.
임기가 5년이니까 성과를 내야겠다며 조급한 마음으로 대북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 뭔가 가시적인 업적을 위해 서두르기보다는 북한이 도움을 요청할 때 대화하고 도와줘야 진정한 통일이 가능해질 것이라 본다.
어떻게 북한을 살리고 남북통일을 이룰지는 10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 급하게 하면 졸렬한 작품이 나오는 법이다. 5년 동안 서두르기보다는 통일의 초석을 두는 게 중요하다.
-한반도 긴장 상태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국민의 염원인 ‘통일’에 대비해 우리 정부와 사회가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단일민족이라는 것만 내세워서는 통일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우리가 통일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 서로 싸우다가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또다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나.
우리의 국력을 강하게 키우려면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와 북한이 대등한 생활력을 갖고 왕래해야 한다. 왕래가 없는 통일은 위험하다. 5년이고 10년이고 서로 왕래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우리 목사들이 새벽마다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데 한 번은 젊은 목사에게 ‘통일이 돼서 이북에서 네 식구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겠다고 하면 얼마나 살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일주일, 한 달은 가능하지만 1년은 어렵다고 하더라. 그런데 1년 이상 함께 살 수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힘든 일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최근 다양한 사회문제 중 가장 큰 문제로 ‘저출산’ 문제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제안해 달라.
생활이 윤택해지고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넉넉히 살 수 있게 되니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가부장 제도로 오래 살았는데 우리 어머니가 자녀를 10명 낳으셨다. 그 시대는 다 그랬다.
반면 지금은 아이를 적게 낳아서 귀하게 키우려고만 하다 보니 훈육도 제대로 안 되고 우리 사회에 병폐가 많다. 구조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아이를 낳아서 교육하고 결혼시키는 데 돈이 많이 들고 힘이 드니 안 낳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구가 줄어들고 학교도 문을 닫는 등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운동을 전개해서 아이 낳는 걸 장려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 정서와 생각, 사상, 이념을 선도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언론사가 해야 한다. 올해 창간 29주년을 맞는 경기일보의 어깨가 무겁다.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다. 희망이 있는 나라다. 우리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 취업난이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좋은 일자리만 가려고 고집하니 취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젊어서 열심히 노력해 자기 몫을 한다면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자식 키우느라 소 팔고 땅 팔아 교육했는데 정작 자신들의 노후대책을 못 세웠다. 지금 자라는 자녀 세대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노후대책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내 자식이 나중에 나를 돌봐주겠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름대로 노후대책을 세워 안정되게 지내고 남는 것은 사회에 환원하고 가면 된다. 그러면 앞으로 노인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경기일보가 창간 29주년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경기일보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원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수원의 인구가 3만 명이었다. 지금은 120만 명에 육박했는데 인구만 보더라도 수원이 엄청나게 변했고 경기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외형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는 물론 교육과 국제관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故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수원에 존경하는 세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선경 그룹(현 SK)의 故 최종현 선대회장이다. 최 선대회장은 수원농고와 농대를 나와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과 선경을 일으켰다. 두 번째는 송영복 씨로 영복여중·고교를 세운 분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김장환 목사라고 했다. (웃음)
한 사람은 사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교육을 일으킨 사람이다. 저에 대해서는 성직을 통해 수원을 발전시켰다는 맥락에서 존경한다고 했다. 저로서도 영광이다.
대부분 돈을 벌면 서울로 가는데 저는 고향을 지켜보겠다고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다. 늘 고향인 수원, 나아가 경기도를 잊어본 적이 없다. 서울은 제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일보가 29주년을 맞았는데 저 역시 도민들에게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 영광이다. 경기일보가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해 도민들의 소식은 물론, 사상과 이념 등을 선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은…
대담=이선호 문화부장 / 정리=송우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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