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Mind the 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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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THE GAP! 런던 지하철 승강장 바닥에 적혀 있는 문구다. 런던 지하철에서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Gap)은 승객이 가방을 먼저 승강장으로 던지고 건너야 할 만큼 넓다. 넓은 곳은 70㎝ 이상이란다. “이 역은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가 넓으니 조심하세요!” 서울 지하철에서 항상 듣는 안내방송이다. 이 두 개의 유사한 경고가 필자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왜 런던 시는 이 위험(?)을 방치하고 있을까? 런던시민은 불평이 없나? 이 질문에 런던을 안내해줬던 지인이 재미있게 설명했다. “런던시민은 자신들의 칭얼거림(요청)을 정부가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는 현명하다. 또한 이 현명함은 지하철의 넓은 간격을 스스로 조심해서 건너는 연습에서 얻어졌다”는 것이다. 지인의 유머에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 사회에 요구한다. 만약 런던처럼 승강장과 전동차의 간격이 넓은 역이 있다면, 거기서 (개인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여론은 안전에 소홀했던 개인의 책임으로 볼까 아니면 그것을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갈까? 물론 그 책임의 소재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여론은 아마도 안전 문제를 방치한(?) 정부의 잘못이라고 몰아갈 것 같다. 어디까지 국가가 개인을 돌봐야 하는가?

제도가 생활세계에 개입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통제되고 개인의 자율성은 축소된다. 국가에 의존하면 할수록 개인의 주체적 삶의 공간은 더 좁아진다. 생활세계는 제도로 대체될 수 없는 자체의 로직(logic)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책임지려고 한다. 개인이 안전에 대해 인식하고 스스로 대처능력을 기르기도 전에 국가가 해결해준다고 나선다. 방법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한 예로 세월호 사건 이후 수학여행은 물론 대부분의 교외활동을 금지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사고도 없다는 단순 처방이다.

다른 예로, 현 정부의 5대 국정목표 중 하나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이다. 국가가 어떻게 내 삶을 책임지나? 내 삶을 국가에 맡길 사람이 있나?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영위하는 것이고 그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닌가? 물론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정부의 몇 가지 정책(안)을 보면 단지 수사적 표현만이 아닌 것 같다. 장기 소액 연체자에 대한 부채탕감 방안. 물론 부채 탕감이 그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준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파생되는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의 문제는?

개인이 책임질 부분과 국가가 책임질 부분, 제도의 로직과 생활세계의 로직, 국가가 주도할 것과 시장원리에 맡길 것이 구분되어야 한다. 이런 구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자율성을 인정할 때 현명한 시민, 건강한 생활세계, 정의로운 시장경제가 가능하다. Mind the Gap! 여기서 Mind는 외재적 요소가 아니라 내재적 역량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순종 

경기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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