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독립유공자’를 꺼내다] 3. 독립유공 후손의 눈물

독립운동하다 옥사 했어도 “자료 부족” 퇴짜 놓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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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영일씨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커다란 가방에 가득 챙겨 온 서류들을 펼쳐놓고 한참을 설명하던 염영일씨(72)는 갑자기 울컥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조부인 고(故) 염석주 선생의 업적을 인정받고자 십수 년째 고군분투를 벌여온 지난날에 대한 감정이 복받친 듯했다. 염씨는 “이런 거 하지도 않았으면 잘 살았을 텐데, 이제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며 “자식들에게 계속 도전해보라고 얘기는 하겠지만 강요는 안할 생각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염석주 선생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인 최용신의 후견인으로 활동한 인물로, 수원지역 신간회 활동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만주에서 추공농장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자금 지원 활동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간회 자체가 일제 강점기 당시 합법 단체였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단체로 인정이 안돼 염석주 선생의 업적 또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손자인 염씨가 중국 흑룡강성까지 찾아가 자료를 발굴하고, 경기도와 수원시에서도 염석주 선생의 독립 유공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보훈처는 번번이 신청을 반려해 왔다. 

염씨는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후손들이 직접 자료를 갖다 바쳐도 인정을 안 해준다”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을 해주는 것을 정작 우리나라에서만 애매모호한 이유를 대가며 거절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정병기1
▲ 정병기씨
경북 봉화군에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한 고 정용선 선생 또한 수십 년째 독립 유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증손자 정병기씨(60)가 40년째 전국을 돌며 자료를 수집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국가보훈처에서 정용선 선생의 옥살이를 증명할 수 있는 판결문 등 객관적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데, 해당 자료들은 지난 1981년 1월7일 정부에서 문서정리주간실시계획공보 명목으로 폐기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없어진 자료를 유족들에게 찾아오라는 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씨가 일본 외무성, 미국 등지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청와대 등에도 수차례 투서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간암까지 얻었지만, 정씨는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다. 정씨는 “투병 생활 중이지만 증조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몸 닿는 데까지 뛰어볼 것”이라며 “후손에게 부끄러운 나라를 물려주기 싫은 마음도 크다”고 말을 마쳤다.

김규태ㆍ유병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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