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무인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불리는 기술을 우리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사회과학적 가치와 관점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의 경우 주행 중 갑자기 앞에 사람이나 야생 동물이 나타나 차를 멈추기 어려울 때 이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핸들을 돌려야 할지를 사전에 결정하고 알고리즘에 반영해야 하는데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모호하기만 하다. 만약 핸들을 돌려서 탑승자가 다치게끔 설계돼 있다면 아무도 자율주행차를 사지 않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각종 사회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처럼 자율주행차는 고도기술의 집합체이고 뛰어난 혁신의 산물이지만 인문사회과학적 탐구가 같이 수행되지 않고서는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고 다른 나라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기존 산업 패러다임이 아닌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인문사회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며 기술 관점이 아닌 ‘인간중심’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 전반의 시스템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
우선 인문사회과학 연구 분야의 R&D 예산을 확대해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과학기술분야에 비해 정부의 R&D 예산 지원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16년도 인문사회연구 순수 지원액은 2천990억원으로 전체 R&D 예산의 1.6%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계속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과학기술분야는 현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순수기초연구 예산이 2020년까지 2배로 증액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 분야 간 연구격차의 심화가 예상되며 인문사회분야 홀대론 등 인문사회계 반발이 우려된다.
앞서 언급한 연구 기반을 토대로 다학문 간의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 독일, 일본을 보면 과학기술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도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균등하게 발전했고 서로 시너지 효과로 오늘날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앞서게 됐다. 이제 우리도 대학과 연구소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인적자원, 기업의 기술력과 마케팅 역량,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연계한 인문학 기반의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확산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모든 사람과 사물이 서로 연결되고 고도로 지능화된 초연결·초지능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며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아이작 뉴턴의 조언처럼 인문사회과학적 탐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멀리, 보다 넓게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배재석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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