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개헌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보수우경 세력에게는 평화헌법의 개헌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에 의해 주도된 평화헌법은 일본에 씌워진 족쇄로 보며, 개헌은 이러한 족쇄를 풀고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로 환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패전한 일본에 평화헌법은 천황제의 유지와 국가의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 되어준 측면도 있었으나, 전후 수십년이 지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흥한 후에는 그 효용성이 사라진 것이다.
일본의 우경세력은 제국주의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일본의 좌표를 모색하기보다는 명치유신과 제국주의 시대에 향수를 보이면서 동 연장선에서 일본의 미래를 찾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은 인종 우월적인 일본 국학의 신국사관(神國史觀)에 뿌리를 두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는 대외적 장식용으로 할 뿐이다.
우경세력이 개헌에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개헌에 대해 일본국민은 2차 세계대전과 원폭의 참화로 인해 또다시 전쟁의 폐해를 겪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 유보적 의견이 더 많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총선을 통해 개헌에 필요한 중의원 23 의석을 확보는 하였으나, 일반 국민의 뿌리 깊은 반전정서와 사학스캔들로 인한 아베 총리에 대한 낮은 신뢰도의 극복 여부가 관건으로 보인다. 우경세력의 개헌추진 시도에 대해 평화헌법 유지를 희망하는 일반 시민들의 저항 구도가 앞으로 일본 국내정국의 향방을 결정해 나가는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종전 후 수십년간 줄곧 자민당에 의한 일당정치가 가능하였던 세계 유례가 없는 특이한 민주주의 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한 배경에는 일본의 시대적사회적 요인들이 있겠으나, 통치자(쇼군, 다이묘, 천황)와 피통치자(개인) 간의 관계가 가부장적인 관계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왔던 역사적 전통의 단면이 있다고 보인다.
일본의 이러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룬 ‘일본의 재구성’의 저자 패트릭 스미스는 일본국민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사고와 의식의 자율성을 자유롭게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주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에 순응적인 일본 국민들이 개헌 문제를 계기로 정부 제시 방향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율적 시민의식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주목되며 현대의 일본을 이해케 하는 의미 깊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일본의 개헌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길을 여는 것으로 우려가 많으나, 이에 머무르지 말고 안보, 국익 그리고 통일을 아우르는 대국관하에 대일 관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역량의 발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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