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특정성향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後身)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이들 연구회 출신이 청와대ㆍ법무부 등에서 요직을 차지한 터라 야당의 걱정은 컸다. 인사청문회에서 코드 문제를 따진 야당이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은 사법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 대법원장 취임 50일이 지난 지금 사법부 모습은 어떤가. 야당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걱정한 대로 가는 것 같다. 김 대법원장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재조사를 지시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판사들 성향을 분류하고, 특정성향 판사들의 신상자료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인사에 반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 시절 ‘사실무근’이란 결론을 내린 진상조사위 조사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특정성향 판사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논란을 종결짓기 위해 재조사를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사법부가 안정을 되찾고, 사법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거기에 있다면 딴죽을 걸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재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이다. 그것이 흔들리면 또 다른 분란이 생길 터, 김 대법원장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는 조사위원장에 민중기 서울고법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자신이 이끌었던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고, 재조사를 요구해 온 법관대표회의 소속 판사에게 조사 지휘권을 준 것이다.
민 판사가 임명한 6명의 조사위원 구성도 문제가 있다. 위원 5명이 ‘양승태 사법부’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고 재조사를 하자고 한 인권법연구회와 법관대표회의 멤버여서다. 이처럼 출발부터 편향성을 노출한 재조사위가 공정하고 공평한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조사 대상자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사가 진행된다면 새로운 논란과 갈등이 생겨 사법부가 내홍에 휩싸일 수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에서도 같은 코드의 판사들을 중용하고 있다. 그는 판사 3천명의 인사실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대법관 추천위원회의 일선 법관 몫 위원에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나란히 임명됐다.
이제 우리법연구회ㆍ인권법연구회ㆍ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은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시절 군을 장악했던 ‘하나회’ 조직을 연상시킬 정도로 득세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김 대법원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지만 그들의 특정성향과 그들을 요직에 앉히는 코드인사로 사법부는 골병이 들지도 모른다. 사법부가 조화와 균형을 잃고, 정치에 오염될 수 있어서다.
이상일 가톨릭대 초빙교수·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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