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기운과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서 지역 상권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특히 전국 지자체마다 불고 있는 ‘지역 상품권 유치’ 열기는 침체된 지역 상권에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경기도의 일부 지자체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으로 대표되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 상품권’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성남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발행한 ‘성남사랑상품권’을 소규모 가게와 음식점, 서점, 독서실, 학원 등으로 확대해 지역 상품권의 선순환 소비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시가 운영 중인 복지정책과 연계하면서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대라는 시너지 효과도 얻고 있다.
■지역 상품권의 한계 극복한 ‘성남사랑상품권’
지방자치단체는 행정구역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다. 다만, 지역 상품권은 지정된 점포 또는 특정지역에서만 소비가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다. 이 때문에 전통시장으로 분류되는 지역 내 상권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이용이 이뤄졌다.
하지만, 성남시는 한계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지역 상품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시는 통화(通貨)의 빠른 순환과 지역에서 돈이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시는 상품권 취급점포를 골목상권과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음식점, 독서실, 학원 등으로 확대해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점포와 유흥업소를 배제해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지난 2006년 20억 원 규모로 시작한 ‘성남사랑상품권’ 발행액은 지난해 260억 원으로 13배가량 증가했다. 가맹점 또한 7천769개소로 크게 늘었다. 상품권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설 명절에는 골목형 시장에서 매출이 크게 오르면서 지역 상권 활성화라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골목형 시장인 분당 돌고래시장, 금호시장의 상거래 기록을 분석한 결과 매출이 평균 27.8% 올랐다. 분당 돌고래시장은 2015년 18억 원에서 2016년 23억 원으로 매출이 27.7%로 껑충 뛰었으며, 금호시장의 매출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매출이 늘어나면서 시장 내 빈 점포도 사라졌다.
시는 한발 더 나아가 상품권을 구매하는 시민에게 할인혜택을 줘 상품권 구매를 유도했다. 농협중앙회 성남시지부 등 28개 지점에서 상시 6%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판매해 1만 원권 성남사랑상품권을 9천400원에 살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상품권의 선순환 구조 만들다
청년배당, 공공산후조리 지원사업, 무상교복 등 성남시 3대 무상복지는 성남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공산후조리 지원사업은 신생아를 출산한 산모에게 50만 원의 산후조리 지원금을 지원해 신혼부부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
또 만 24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배당’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시책들은 ‘시민이 주인 되는, 시민이 행복한 성남’이라는 시 슬로건에도 크게 부합하고 있다.
특히 시는 지역 상품권인 ‘성남사랑상품권’을 이 시책과 연계하고 있다. 지원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면서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외국어, 컴퓨터, 제과 제빵, 미술분야 등 전문학원에서 성남사랑상품권을 사용할 시 3만~5만 원의 할인혜택을 보았다.
또 기존 전통시장과 음식점, 도·소매 업종으로 치중돼 있던 상품권가맹점을 젊은 층에서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점, 체육시설 등으로 유통범위를 확대해 혜택 범위를 넓혔다. 시책과 상품권 연계는 시중에 유통된 상품권 10장 중 9장 이상이 회수(회수율 99.7%)되는 등 선순환 유통구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올해 하반기 시행 예정인 아동수당(월 10만 원)과 시가 최근에 발표한 시민배당 1천800억 원을 합치면 지역 화폐 발행액은 2천523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전국에 부는 지역 상품권 바람
지역 상품권의 안정적인 소비구조를 마련한 성남시를 필두로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상품권과 복지정책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성남사랑상품권과 가평사랑상품권을 운영 중인 성남과 가평을 제외하고 안양, 안산, 시흥에서 ‘지역 상품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시흥에서는 지역 화폐를 활용해 관내 만 19~24세 청년에게 기본소득(최저임금x10시간)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중소자영업자 대책 TF’가 토론회를 열고 아동수당·기초연금 등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TF 단장을 맡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수원정)은 “아동수당 등 사회임금과 공무원 복지수당을 지역에서 사용하게 하면 지역경제에 돈이 도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난다”며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임대료 인하 등의 보호 대책도 함께 추진된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아닌 투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지역 상품권의 효과가 검증되면서 지자체마다 도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성남시 관계자는 “지역 상품권은 국가 공식 화폐인 법정 화폐와 달리 소규모 지역 공동체 안에서만 쓰이기 때문에 세계화와 대기업 횡포에 맞서 지역적 소비와 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정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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