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가설극장

▲
1966년경에 아랫마을 전기 방앗간 3선 동력 전선에서 110v 전기를 뽑아내서 50촉짜리 전구를 켜면 2㎞ 떨어진 윗마을에서도 주변의 건물이 환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명의 상징이라 할 전기가 밝기도 하지만 어려서는 지금보다 시력이 더 좋았을 것이고 공기 중 미세먼지가 적어 청명하였기에 멀리서도 잘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설극장 영화가 상영된다는 방송을 들은 동네 젊은이들은 저마다 쌀 반 말을 가슴에 안고 나방이 불빛에 몰려들 듯 천막 영화관을 행해 달려간다. 가는 길 사거리 가게에서 쌀을 돈으로 사서 지전과 동전을 꼭 쥐고 뛰어간다.

 

쌀을 주고 돈을 받으면서 ‘쌀을 산다’고 하고 돈을 주고 쌀을 받으면서 ‘쌀을 팔아온다’는 역설적 표현은 농경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그러니 쌀을 사면 내 손에는 돈이 들어온다. 그 돈으로 영화표를 산다. 고모는 어린 조카를 오버코트 속에 숨겨 극장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기도 아저씨는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

 

▲
영화가 끝나면 추첨으로 이어지는데 내 손의 표와 같은 번호가 적인 짝표가 저 추첨함 안에 들어 있다. 늦은 시간 길가의 긴 풀잎새에 이슬이 맺힐 때까지 우리는 추첨을 기다리고 결국 바가지 1개를 탄 동네 누나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최고 경품은 당시 어머니들의 로망인 재봉틀, 반상기, 수저 세트인데 5년 내내 바가지만 받았다. 이 바가지 재료인 플라스틱은 미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1등 2등 경품은 영화가 끝나는 7일 차까지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다. 영화사 창립 이래 15년째 끌고 다니는 녹이 슨 쇼윈도우 경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젊은 형, 누나들에게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제공해준 가설극장의 추억은 지금 60이 넘은 그분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잘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면서 영화 제목, 관람시간, 좌석을 지정하는 요즘의 영화관을 보면서 50년 전 가설극장을 추억하는 것도 문화의 향기라 생각한다.

 

이강석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