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의미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역구 예산을 배당받아 놓고 자기 지역구 주민들에게 자신이 예산을 따냈다고 표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국가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국회 본연의 역할은 제쳐두고, 내 지역구 챙기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국회에 던지는 일침이다.
한 언론의 국회의원 의정보고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4분의 3인 158명의 국회의원이 예산을 언급했고, 확보한 예산을 합한 금액은 107조 5천109억 원으로 행정안전부와 복지부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가능한 것으로써 의정보고서 내용의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자기 지역구의 선심성 예산을 무리하게 포함시키기 위한 쪽지예산이 난무하면서 SOC 지역개발예산이 정부 원안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비를 따오면 재선에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국비를 확보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개발관련 국책사업을 앞다투어 주장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 내용 대부분은 거액의 지역예산을 따냈다는 자찬일색이다. 예산 확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지역사회의 헌신에 숟가락만 얹어놓고 칭찬하는 것은 민망할 정도다. 치적에 대한 거짓과 과장이 난무하는 행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유권자에 대한 가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돈’으로 치적을 홍보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드는 것 또한 유권자를 얕보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어마크는 국가 예산의 건전성을 해친다. 사업계획도 부실하고 사업타당성도 없는 시설 하나를 끼워넣는 쪽지예산 때문에 예산낭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공성보다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특혜와 이익을 주거나 자신의 재선에 유리한 선심성 공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예산은 ‘눈먼 돈’이라는 그릇된 의식에서 ‘곶감 빼먹듯’ 하면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이 집행되지 않아 재정의 균형과 합리성이 떨어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이어마크로 인해 국회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닌 갈등을 조장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규모 국책사업을 할 때마다 갈등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민주주의 선진국은 지역구만을 위한 선심성 예산을 확보하는 행위를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국책사업의 경우도 공공토론을 통해 사업의 적절성, 타당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중요한 국가사업을 결정하는데 있어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토론 절차를 법제화한 ‘공공토론위원회(CNDP)’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갈등요소를 제거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노력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어마크 행위는 국회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일 수 있게 정치인들은 노력해야 한다. 이익 간 경쟁과 거래를 넘어 공공성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공기로서의 언론의 역할과 현명한 시민의 힘 또한 중요하다. 더 이상 이어마크가 일 잘하는 정치인의 평가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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