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법고(法苦)와 검경수사권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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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인생의 네 가지 고통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들었다. 요즘은 4개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옥고(獄苦), 실직고(失職苦), 이혼고(離婚苦), 파산고(破産苦)다.

 

작년에 타계한 마광수 교수는 ‘운명’이란 저서에서 자신이 겪은 옥고(獄苦)에다 3년 동안의 재판까지를 포함해 법고(法苦)라는 새 단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법고(법으로 인한 고통)를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출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곳에 오지 마시오”라고 했다. 남들보단 훨씬 나은 환경에서 수감생활을 한 사람도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감옥까지는 아니어도 각종 고발 고소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에 불려가 보면 돈과 시간에 따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법고를 겪지 않고 한평생 산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사실 국민은 별로 관심이 없다.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사종결권, 영장청구권 등 어려운 말을 해봐야 짜증만 난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시대의 흐름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제는 그 대안이 경찰이라는데 있다. 경찰이 표정관리, 입 조심할수록 국민은 불안하다.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적은 숫자의 검찰이 난리치는 게 많은 숫자의 경찰이 난리치는 것보다 낫다고 극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로 넘어갈 거라면 한번 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도 있다. 문제는 국민이 실험대상이 된다는데 있다.

 

사실 검·경도 할 말은 많다. 현실 권력에 대항해 제대로 수사한다는 것은 자리를 내놓기 전에는 어렵다. 전 FBI 코미 국장도 트럼프에 대들다 경질되지 않았던가. 결국 인사의 독립과 과잉수사의 금지 등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가능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순 권한 이동은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차피 경찰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거라면 경찰권 비대화를 막는데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준비가 과연 되어 있을까?

 

우리는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이 연루되면 우선 그쪽에 아는 사람이나 소위 쎈(?) 변호사를 찾기 마련이다. 구속이라도 되면 몇천만 원은 기본이다. 돈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재판이 진행되면 비용과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토정비결에도 구설(口舌)이나 송사(訟事)를 조심하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기에 착하게 살라는 말이 나오는데 착하다고 법고(法苦)를 피한다는 법은 없다.

 

대학 병원장이 자기 병원에서 암수술을 받고 입원하면서 느낀 것을 책으로 냈다. 명색이 병원장인 나도 환자가 돼보니 병원행정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화가 나는데 일반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반성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 겪는 고통은 칼자루 쥔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이 돼 보면 많이 바뀌지 않을까. “정의(正義)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똑같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 실현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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