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화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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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음주자리 후 귀가에 안주인 한 말씀, “이제 나도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고 올까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나는 당혹스러웠다. 머리로만 민주주의를 말했던 탓이리라. 술 마신 저녁이면 벌어지는 이 모습에서 나는 ‘문화와 정치’를 가정에서 발견한다. 문화와 정치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정치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역할’을 한다. 문화는 인간적 가치를 구현하는 음악, 문학, 미술, 조각, 연극, 영화 등의 문화예술작업과 그 활동들, 인류학적 관점에서 포괄적 ‘삶의 방식’ 전부, 문명의 발전을 포함한 개인과 집단의 발전 과정 등이다.

 

정의만 보면 문화와 정치는 별개다. 문화, 예술인이 정치관련 의견을 공개, 표출하거나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별히 과거 일제강점기 때, 1980년대 군부와 노조관련 항의저항의 강한 정치적 성격을 보여주는 경우는 있었다. 요즘은 대중매체, 개별 통신수단의 발달, 사생활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사회문제가 바로 현실정치와 연결된다. 생활이 곧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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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돌아가신 위안부 동원 피해자 고 안점순 할머님의 49재 추모제가 지난 5월13일 팔달구 행궁로 사찰에서 있었다. 가족, 수원시민과 관계자들 100여 명이 함께 명복을 빌었다. 추모제를 통한 위안부 동원 피해자들의 아픔과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사죄를 받아야 하는 역사적 당위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느꼈을 것이다. 혹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역사적 맥락을 통해 모인 바람은 민심이 되고, 민심이 정책에 반영되어 정치가 된다. 정치는 다시 시민을 만난다. 정치와 문화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문화활동은 의미를 생산하고 의미는 값어치만큼 삶과 생활에 영향을 준다. 영향받은 생활은 정치가 되어 역동적인 문화를 재생산한다. 건강한 선순환적 문화와 정치의 순환 생태계는 문화시민을 양성하며 문화시민은 민주주의를 완성해 간다. 그 반대의 경우에 발생하는 심각한 폐해는 이미 촛불을 밝히며 경험했다.

 

어느새 훌쩍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과 바쁜 연대활동을 했음에도 비민주적으로 대우받아온 나의 안주인과 함께 이제 선순환적 민주주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겠다. 비록 여전히 새벽녘이면 술 때문에 종종 벌어질 ‘문화와 정치’의 힘싸움이 벌어질 테지만.

 

이득현 (재)수원그린트러스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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