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작년 현충일 기념식에서 탤런트 이보영 씨가 차분하게 읽어 내려간 추모 시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경찰의 경우 매년 15명 정도가 치안 일선에서 순직하고, 1천800명이 넘는 공상자가 발생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일 텐데, 경찰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공포심을 느꼈을텐데 ‘어찌하여 모른 척 돌아서지 않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을까.
그러나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었던 경찰관들의 대답은 뜻밖에 단순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어서”, “경찰이니까” 경찰이라는 사명감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게 만든 힘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명감은 손익 계산적인 판단을 무력화시키며 어떠한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매일 1만5천건 이상의 112신고를 처리하면서 단 몇 초의 골든타임 안에 국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급박하고 어려운 경찰 업무에 있어 사명감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다.
둘째, 하는 일에 맞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물론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과 감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사사건건 타 기관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면 누가 사명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에 대한 사회의 믿음과 존중이다. 예견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게 하는 힘은 상관의 명령도, 그 흔한 매뉴얼도 아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국가와 국민이 있고, 자신은 그러한 국민을 지키는 중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이다.
‘피그말리온’의 끊임없는 믿음과 사랑의 손길이 차가운 돌조각마저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꾸었듯, “우리는 당신을 믿는다”는 메시지는 모든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뇌의 회로를 마비시키고, 위기의 순간에 초능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사명감, 지금 다시 호출이 필요하다. 주취자에게 얻어맞고 억지 민원에 시달리며 자부심은커녕 자존감마저 상실한 요즘의 경찰관들에게 “당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할 사회적 제도와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윤성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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