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경청을 넘어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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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어느새 청년의 시기에 다다랐다. 그동안 가장 달라진 모습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회가 중앙정부의 의견에 주목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현장을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민들의 관점에서 행정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시민들의 주장에만 시선을 고정하다 보니 과거에 비해 부작용도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화장장의 건설과 관련된 갈등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화장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개선되어, 화장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증가했는데, 그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은 많은 난관을 겪고 있다. 화장장이 비선호시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원하는 시설이지만, 일부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시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우리 마을에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시설이 바로 화장장과 같은 비선호시설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이러한 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광범위한 요구에 직면하면서도, 막상 어느 한 곳에 그런 시설을 지으려면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고 좌절하곤 했다.

 

다수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소수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밀어붙이기식 접근은 불공평하다는 주장 또한 강력하다. 이럴 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어느 한 쪽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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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춘천시 동산면의 사례는 이런 의문에 새로운 답을 주고 있다. 화장장을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이 화장장 건립을 피해로만 인식하는 대신에 기회로 보기로 한 것이다. 춘천시가 지역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에 경로당을 지어줬는데, 주민들이 그 건물 1층에 정육식당을 개점한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직접 키운 한우를 잡아서 중간 유통에 드는 비용을 절감했고, 이는 질 좋은 한우를 경제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경쟁력이 됐다. 처음에는 식당 운영의 노하우가 부족해 주민들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지만,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작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역할은 단순히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주민들에게 새로운 정보도 제공해야 하고, 주민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도 해야 한다. 많은 주민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풀어주면서, 다른 소수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도 해소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안을 찾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전형준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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