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 나무심기와 이산가족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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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의 아픔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 나라에도 남북으로 갈라져 버린 이산가족이 있다. 강화도 외포리 항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서해의 외진 섬 볼음도의 한적한 바닷가에 자라는 수은행나무 고목 한 그루는, 북한 황해도 연안 땅에 자라는 암은행나무와 부부사이로 알려져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었지만 직선거리는 8㎞에 불과하다.

나이는 800년, 고려 중엽 쯤 북한 연안에는 암수 두 그루의 동갑내기 은행나무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연안평야를 휩쓴 홍수에 암나무는 잘 버티었지만 수나무는 뿌리째 뽑혀서 서해바다로 떠내려가 버린다. 운 좋게 어부들의 눈에 띄어 건져다가 심은 것이 자라 지금의 보름도 은행나무가 되었다 한다. 

사연을 전해들은 볼음도와 연안의 어부들은 생이별한 은행나무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쓰다듬어 주고자 합동 풍어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때 어부들이 메신저가 되어 암수나무의 소식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북이 갈라져 소식이 끊겨 버린 지가 올해로 73년에 이른다. 

세월이 지나면서 불음도의 수나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수위가 높아져 바닷물이 너무 나무 가까이까지 온 것이 큰 이 이유지만 볼음도 사람들은 북한의 암나무를 잊지 못한 탓으로 해석한다. 다행히 바로 옆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민물 공급을 충분히 받아 지금은 조금씩 몸을 추슬러 가고 있다. 

그래도 북한의 암나무를 향한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바닷바람이 좀 센 날이면 ‘우~웅 우~웅’ 하는 나뭇가지 사이의 바람소리가 북쪽을 향한 울부짖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한편 갑작스런 수나무와의 별거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연안 주민들은 뜻을 모아 바로 옆에다 젊은 수은행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어주었다.

볼음도로 떠내려가 버린 옛 수나무는 이제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연안 암은행나무는 볼음도 수은행나무를 여전히 잊지 못했던 것 같다. 남북분단으로 풍어제를 통한 볼음도의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 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다. 

최근의 북한 자료를 보면 이 암은행나무는 줄기 굵기에 비하여 가지 뻗음이 약하고 열매도 제대로 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두 은행나무가 단 한번이라도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 보름도 수은행나무의 꽃가루를 가져다 연안의 암나무에 수정 시키는 행사라도 치른다면 800년 이별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을 터이다.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이 만나 일궈낸 판문점 선언은 남북화해의 새 지평선을 열고 있다. 합의 이행의 첫 사업으로 산림분야가 선정되었다. 북한 산림을 분석한 자료에는 산림 면적 32%가 황폐화됐다고 한다. 우선 시급한 과제가 나무심기임을 말해준다. 무슨 나무를 어디에다 어떻게 심을 것인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첫 출발을 뜻 깊게 시작하여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하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필자는 새로 출발하는 북한 나무심기의 상징목으로 볼음도와 북한 연안의 은행나무 고목을 제안코자 한다. 이 두 고목나무 아래서 남북한 산림협력 사업의 첫 삽을 동시에 뜨고 고유제라도 지낸다면 애절한 전설과 함께 북한나무심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두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이의 바다는 이번 남북선언에 포함된 서해 평화수역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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