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성장의 덫, 그리고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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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비 15% 매출 증대”, “세계 100대 은행 진입”, “시장점유율 10% 제고”…

 

국내기업이 경쟁우위를 획득하고자 구사하는 전략을 파악하여 대학생들이 제출한 예다. 전략을 오해하여 한결같이 기업의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 전략의 핵심특성은 선택과 집중이다. 마이클 포터도 전략을 “무엇을 안 할지 선택하는 것”이라고 이를 강조한다. 그런데 성장은 취사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수립하는 일은 숫제 어불성설이다.

 

성장은 선택가능한 전략이라기보다, 수익이나 이익 같은 성과이자 전략의 결과다. 성장을 위해 최적의 전략을 선정하지만, 성장 자체가 전략일 수는 없다. 전략으로 오인된 상기의 예는 해당 기업의 성장지표에다 도전적인 수치를 부여한 목표이지 전략이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성장의 욕구는 개인이나 조직이나 매한가지로 강력하다. 기업에서 내놓는 각종 문건을 의미분석해 보더라도 ‘증대, 제고, 개선, 향상, 강화, 극대화, 고도화’같은 성장의 용어가 남발한다. 이렇듯 성장을 추구하는 활동이 만연하다 보니 대학생들이 이를 전략행위로 오판할 만하다.

 

노련한 경영자들은 불황기보다 호황기에 의사결정이 더 힘들다고 강조한다. 제품 및 서비스부터 인력, 설비, 점포의 확장에 이르는 외형성장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위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로 불리는 달콤한 이득에 현혹되어 성장 자체를 전략으로 착각하게 된다. 불요불급한 성장을 추진하다 보면, 어느새 유휴자원으로 돌변하여 오히려 성장이 패인으로 작동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이같이 성장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우위를 가져온다고 믿는 현상을 경영학에서는 ‘성장의 덫’으로 지칭하여 경계해 왔다.

 

기업이 매년 몇십 %씩 성장할 수 있다면, 마라톤 기록도 이미 1시간 이내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에는 항상 부침이 뒤따른다. 아무리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더라도 경쟁사의 출현, 성장속도에 뒤처진 관리역량, 자원의 한계, 시장의 포화에 봉착하게 되고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이에 대처하는 두 가지 해결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하던 활동을 더 열심히 더 빨리 추진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탐색하여 아예 성장곡선을 창출하는 것이다. 창의성이나 기업가정신이 요구되는 후자는 전자에 비해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다. 따라서 기존의 자원, 역량을 한층 치밀하게 활용하여 성장정체를 타개하려는 기업이 훨씬 많다. 치밀한 활용의 성과는 대부분 원가절감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원가절감으로는 성장곡선 상의 정체국면을 벗어나기 힘들다. 잠시 버틸 뿐이다. 설상가상은, 성장의 유혹에 빠져, 성장으로써 이를 돌파하려고 우길 때다. 이쯤 되면 자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원가까지 죄어야 표면적으로 유지가 된다. 이른바 갑질이다. 이런 맥락에서, 활용을 뜻하는 영어단어 ‘exploitation’이 착취의 뜻도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성장의 덫’으로부터 유추해 보면, 갑질의 본질은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의 결여이며 성장을 전략으로 혼동하면서 증폭된다. 최근 떠들썩한 갑질은 여기에 개인의 파렴치가 얹어졌을 뿐이다. 개인 차원의 부도덕도 지탄 받아야 하지만, 기업경제 차원에서 ‘성장의 덫’ 또한 반추해 볼 일이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이 갑질로 변질되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는 진정한 전략에 도전할 때다.

 

우형록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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