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난민을 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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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반난민 정서의 열풍이 우리 사회에 갑자기 불어닥쳤다.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무비자 입국 제도를 이용하여 제주도에 입국한 뒤 집단적으로 난민신청을 하자 이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되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예멘 난민 수용 반대를 외치는 청와대 청원 숫자가 50만명(청와대 청원 중 역대 최대라고 한다)을 넘어섰고, 지난 주말에는 많은 시민들이 ‘가짜 난민 특혜 반대’라는 피켓을 내걸고 거리로 나섰다. 이러한 난민 반대 목소리는 SNS를 통해 괴담 수준의 왜곡된 정보(예컨대 난민 신청자 대부분이 젊은 남성들로 한국 여성들을 강간할 목적으로 입국했다는 등)가 난무하면서 증폭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적으로 번영한 한국사회가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 보인 분노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외국인 혐오증에서 비롯된 것이고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에게는 공감 능력과 인도주의적 정서가 부족하다고 꼬집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이 점에 대해서는 그리 할 말은 없어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가 어찌 우리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유럽에서는 메르켈의 독일을 중심으로 난민 문제를 인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시리아 난민들 속에 IS 테러리스트들이 잠입한 사건과 쾰른에서 이슬람 난민들의 여성 집단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후, 난민에 대한 인도적 목소리는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반면 헝가리 총리는 난민을 ‘독극물’로 비하라면서 난민을 돕는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또한 유럽의 많은 정치가들은 점점 난민이나 이주자에 대한 반감을 선동적으로 부추기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아직 그런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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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나 유럽에서나 난민, 특히 이슬람 난민 유입은 일자리 잠식, 테러 가능성, 성폭력 등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우려와 두려움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거 없는 이슬람공포와 우리 속에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들이 개입해 있음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난민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이나 편견, 이유 없는 증오와 공포심에서 벗어나 정확한 사실 관계에 입각해서 이슬람 난민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난민은 살벌한 내전과 죽음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모국을 탈출한 사람이지 죄인이나 범죄자가 아니다. 물론 난민 중 죄인이나 범죄자, 혹은 위장 난민이 섞여 있을 수는 있다. 그것을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걸러내는 일은 우리 정부가 할 몫이다. 고난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의 관심은 오랫동안 가족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안위와 번영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세계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인류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조금 열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 때 세계 11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보다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국가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권 경기대 다문화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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