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시민들이 온도계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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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이다. 기상 예보를 보니 7월 말까지는 이렇다 할 비소식도 없어서 당분간은 지금처럼 더위를 견디며 지내야 할 모양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폭염에 미세먼지가 더해지기도 하고, 한낮에는 오존 농도가 높아져서 오존 경보가 발령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요즘 수원에서는 사면초가에 빠진 시민들이 매주 토요일에 기다란 온도계를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리고 10여분 남짓 특정 장소에 머물며 그 장소의 온도를 측정한 후 인증샷과 함께 온도 정보와 사진을 어딘가로 보낸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 그것도 휴일에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수원시민 약 12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이 활동은 ‘기후행동 수원시 열지도 그리기’ 활동이다. 수원기후행동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에서 주관하고 있는 이 활동의 주요 내용은 폭염이 발생하는 기간에 수원시 네 개 구, 백 곳에서 시민들이 직접 온도를 측정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첨단 장비를 통해 정확한 온도가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수원 시민들은 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일까? 그것도 백 명이 넘는 시민들이 말이다. 그 이유는 같은 도시 안에서도 국지적으로 온도 차이가 크며, 이런 작은 단위 지역의 온도는 기존 대기 측정망을 통해서는 모두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각에 수원 중심의 상업 지역과 공원이나 하천 주변의 온도는 5, 6도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시민들이 직접 나서면 이런 차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도시 곳곳에서 직접 측정한 정보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수원의 이런 사례처럼 다수의 시민이 어떤 주제를 직접 조사하고 연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시민과학(citizen science)” 활동이라고 한다. 시민과학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측정한 자료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민과학의 방법이 점차 개선되고 사례들이 쌓여가면서, 최근에는 전통적인 과학 분야에서조차도 시민과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수의 국지적인 지역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가 보다 높은 수준의 안목을 갖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시민들이 온도계를 들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온도를 잰다고 해서 갑자기 폭염이 사라지거나 환경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폭염이나 미세먼지와 같이 시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환경 요인들을 능동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장해 가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주변에서도 다양한 시민과학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자기 주변에 어떤 시민과학 활동이 있는지 찾아보고 한번쯤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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