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설립된 NATO 회원국이 냉전 후 옛 소련과 그 위성국들로 확대되면서 러시아의 경계심이 높아진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비용문제로 그 존립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 등 일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등에게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것을 ‘불감청 고소원’의 심정으로 반기는 분위기도 있으나, 러시아에 가까운 국가들이 위협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금년은 NATO 회원국 중 러시아에 가장 인접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독일, 스웨덴을 거쳐 1795년 이래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3국은 1918년 1차 대전 종전과 소련 성립의 혼란기 틈바구니에서 독립국이 되었으나, 20년 후 1939년 폴란드에 군대를 진주한 소련은 이들을 강압해 친소련 정부를 수립하고 결국 1940년 연방 내 공화국으로 편입시킨다. 반세기가 지난 1991년에서야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을 되찾은 이들 3국은 2004년 NATO, 2005년 EU에 가입하고 2010년 이후 차례로 OECD까지 가입함으로써 안보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확고히 서유럽의 일원이 되었다.
3국 인구 600만의 작은 국가들로 수 세기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은 이들로서는 위협적인 이웃으로 재등장한 러시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NATO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러시아 민족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러시아가 조지아, 크림, 동부 우크라이나 등을 침공할 때마다 현지의 러시아인 거주자 권리보호를 명분으로 삼아온 점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무력 침공이 아니더라도 러시아어 온라인 활동을 통한 국내 여론조작 등 사이버 심리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07년 에스토니아는 수도 탈린(Tallinn)의 소련군 추모비 교외 이전문제로 러시아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전국 전산망이 일시 마비되어 큰 혼란을 겪었는데, 해커를 동원한 러시아의 복합전(hybrid war)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NATO관이 이들의 불안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 방문한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의 분위기는 언론에 비친 것만큼 불안하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NATO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확고하기 때문이다. 캐나다군 중심의 NATO군이 주둔해 있으며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번 정상회담 길에 이곳을 방문해 동맹을 확인했다.
둘째 러시아에게 라트비아는 에너지 수출 길목에 있는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와는 전략적 가치가 같지 않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화물 수송을 담당해온 리가항의 역할도 1991년 독립 이후 현저히 줄어들었다. 셋째 러시아에 대해 유화적인 제1당을 중심으로 한 연정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당장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통외교를 거부하고 동맹관계조차도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NATO관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미동맹의 장래를 걱정하는 시선으로 발트 3국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다.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前 주OECD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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