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도권은 서울 주변을 둘러싼 그린벨트 때문에 매우 독특한 도시확장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서울 도심에 기업과 일자리가 집중화돼 주거비가 증가하게 되자, 정부는 땅값이 싼 수도권 외곽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린벨트를 피해서 택지 공급이 이뤄지다 보니 서울시 그린벨트 바깥에 있는 신도시 주민들은 직장으로부터 더 멀리 통근하게 되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더욱 악화했다. 최근 출퇴근 소요시간이 평균 1시간 30분을 넘게 되면서 삶의 질에서 지역 양극화도 매우 심해졌으나, 안타깝게도 정부와 서울시 간의 그린벨트 해제 논쟁에서는 비정상적 광역적 도시확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빠져 있다.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양측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기형적인 수도권 확장을 막으면서 주거 빈곤층을 위한 주택 공급을 실천하는 방안에 대한 힌트가 있다. 먼저 정부는 서울시 인근에 소위 비닐 벨트(Vinyl Belt)라고 부르는 환경보존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그린벨트를 풀어 공공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공공 임대주택은 기본적으로 도시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주거다. 대중교통에 의지해 매일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도시 노동자들에게 좋은 주거지는 통근거리가 짧아지고,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난 도심이어야 한다. 도심으로부터 멀고 녹지가 풍부해서 저밀도 개발이 요구되는 그린벨트 지역은 기본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다.
반대 측의 논리도 기만적이고 자기 모순적이다. 그린벨트 해제를 극렬히 반대하는 주민들의 속내는 대규모 공공 임대주택이 집값 하락을 가져올 거라는 우려가 환경훼손 방지보다 우선이다. 도심 유휴지를 활용해 택지를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주거 빈곤층의 환경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보이질 않는다.
도시 내 택지는 가장 고통받는 주거 빈곤층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공급돼야 한다. 또한, 해당 지역에 충분한 녹지 공간을 만들어 주거 가치를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 공간을 단절함으로써 도시발전과 주민 생활을 저해하고 있는 광폭 도로와 지상 철도의 지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매번 검토하는 핵심 정책인 도시 내 교통 인프라 지하화는 막대한 사업비 탓에 추진이 좌절됐다.(예를 들어 수도권 경부선과 경인선 지하화는 각각 14조와 6조) 그러므로 비닐 벨트의 공공 개발로 얻어지는 재원을 교통 인프라 지하화 사업에 투입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하화로 얻어진 공간에 공원을 만들고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주거복지 수혜자들이 현재 사는 지역에 필요한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형평성과 공공성을 가치로 삼는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및 생활 SOC 정책과도 괘를 같이 한다. 그리고 대다수 도시민이 누리지 못하는 교외의 녹지공간을 매일 걷고 숨 쉴 수 있는 도심 공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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