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일지구 일대 최고위층 무덤·유물 다량 출토
이런 가운데 지난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선 7기 하남시장에 당선된 김상호 시장은 ‘명품도시 하남’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고장 정체성 찾기’는 불가피하다면서 초기백제 최고위층의 유구ㆍ유물이 다량 출토된 곳에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왕성지(왕이 머무르던 곳)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학계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서울 풍납ㆍ몽촌토성과 약 8~10㎞ 떨어진 하남시 춘궁ㆍ교산동 일대는 더불어 한성도읍기 백제의 왕성지로 거론되는 곳이다.
이에 본보는 그동안 하남시에서 출토된 유구ㆍ유물과 고대 문헌(사료) 등을 토대로 하남시 일원이 위례성인 근거를 재구성했다.
■ 그동안 출토된 유구ㆍ유물에 비춰 하남시 일원이 위례성인 근거
지난 4월 감일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과정에서 4세기 중반~5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석실분 52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횡혈식 석실분은 백제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으로 서울 인근에서 이처럼 많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직사각형으로 땅을 파서 바닥을 다진 뒤 길쭉하고 평평한 돌을 차곡차곡 쌓고 한쪽에 무덤방에 드나들 길을 만든 구조다.
이 고분들은 한성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으로 보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과 가락동, 그리고 방이동 일대 고분군이 도시개발로 대부분 파괴된 상황에서 당시 백제 건축 문화와 생활상, 국제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부장품으로는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토기와 매우 흡사한 직구광견호(直口廣肩壺ㆍ아가리가 곧고 어깨가 넓은 항아리)를 비롯해 중국에서 제작된 청자 계수호(鷄首壺ㆍ닭머리가 달린 항아리)와 부뚜막형 토기 2점이 출토됐다.
화려한 부장품으로 미뤄 보아 최고위층 무덤인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크기는 묘광이 세로 330∼670㎝, 가로 230∼420㎝이고, 석실은 세로 240∼300㎝, 세로 170∼220㎝다. 높이는 180㎝ 내외다. 무덤 간 거리는 약 10∼20m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확인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70여 기. 한 곳에서 50기에 달하는 한성시대 석실분이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이번 발굴이 한성도읍기 백제사 비밀을 풀 열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춘궁ㆍ교산동 일대에서는 최근까지 초기백제 도읍지로 추정될만한 유물과 유적지 등이 적잖이 발견, 또는 발굴되고 있다.
먼저 동쪽에 남한산성과 검단산이 있고 서쪽에 이성산성, 남ㆍ북쪽에 한강과 비옥한 평야 등이 펼쳐져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여년 전 검단산 정상 부근에선 동명성왕(주몽)에 제(祭)를 지냈던 제단이 발견됐고, 이보다 앞서 당시 도읍지 방어시설로 보이는 이성산성 정상에서도 천단(天壇)과 지단(地壇)으로 여겨지는 8~9각 건물지가 한양대 박물관팀에 의해 발굴됐다.
정사(正史)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한 원년(BC 18년) 동명묘를 세웠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기록됐으며 이후 나라에 우환이나 왕이 등극한 정월에 왕이 직접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8차례나 등장한다. 또, 고이왕(8대) 10년 대단(大壇)을 설치해 제를 올렸는가 하면 근초고왕(13대) 2년 천지신에게 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는 이성산 정상에서 천단과 지단으로 추정되는 8~9각 건물지가 발견된 점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건 제15대 침류왕 원년(384년)이다.
왕궁터로 추정되는 춘궁동 남쪽에는 초기백제때 지어진 천왕사지(天王寺址)가 자리하고 있고 서쪽 이성산성 자락에는 동사지(桐寺址) 등이 오래전에 발굴됐다.
천왕사는 조선시대까지 사용해 왔다는 게 사료를 통해 확인됐으며 규모면에서도 3만~6만㎡에 이르는 큰 사찰이다. 특히 이곳에서 사리공이 뚫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60㎝와 140㎝ 크기의 석재가 발견됐다.
백제 불교가 왕실불교로 정착됐다는 점에 대해선 부정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당시 고대 국가의 틀과 3만~6만㎡ 규모의 천왕사 건물 크기에 비춰 바로 이곳이 도읍지라고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 역사자료를 통해 하남시 일원이 위례성인 근거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1에 기록된 백제 건국신화에는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할 때 한산(漢山ㆍ남한산성 추정)에 올라 본 열 신하들은 미추홀(인천)로 향하려는 비류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북으로는 한수(아리수)를 끼고 동으로는 산으로 둘러싸였으며 남으로는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는데다 서쪽으로는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천연의 요새로 된 좋은 땅을 다시 얻기 어려우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온조는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고 이 말을 듣지 않은 비류는 백성을 나눠 미추홀에 정착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또,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이병도 박사 등은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백제의 왕궁터라고 확신했다.
더욱이, 하남시 춘궁동은 ‘궁안’ 또는 ‘궁말’ 등으로 현재까지 원주민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다.
하사창동(下司倉洞)과 상사창동(上司倉洞) 등은 또 어떤가? 왕궁의 곡식 등을 저장하던 창고와 연관된 명칭이다.
왕궁 주위로 관공서들이 즐비한 골목을 뜻하는 한자인 ‘항(巷)’이 들어간 명칭, 항동도 예사롭지 않다.
모두 하남시 춘궁동 일대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난 마을 이름들이다. 이 이름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 거대하고도 웅장한 왕궁이 눈앞에 우뚝 선다.
‘삼국사기’ 백제 도미부인 설화와 관련, 장소 역시 서울 강동구나 송파가 아닌 하남시 창우리 근처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하남 사람들은 지금도 하남을 통과하는 한강을 도미강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조선시대까지 도미원이나 도미나루 등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럼에도 불구, 일부 학계에서는 몽촌토성과 20여 전 아파트를 짓다 유구와 유물 등이 다량 출토된 풍납토성 주변을 초기백제 도읍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하남시 일원은 대규모 택지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어떤 유구와 유물이 또 쏟아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남=강영호기자
“박물관 건립·관광 프로그램 적극 추진… ‘역사가 흐르는 하남’ 조성”
-역대 선출직 단체장은 우리 고장의 역사에 관심이 크게 없었다. 내고장 정체성 찾기에 나서는 이유는.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은 지역 공동체의 성립과 직결돼 있다. 공동체는 공동의 생활뿐 아니라 공동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때로는 자부심의 형태로, 때로는 아픔의 형태로 공동체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 따라서 ‘하남’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기 위해서는 역사적 정체성의 확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동안 역대 단체장이 상대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그만큼 하남이라는 도시가 하남의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하남은 그동안 서울의 변두리거나 광주시의 한 부분으로 머물렀기 때문에 독자적 정체성의 확립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하남은 인구 36만을 바라보는 수도권의 중견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것은 하남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결속을 굳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역사박물관 건립추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최근 감일지구에서 발견된 초기백제의 유구 유물을 보전하기 위해 박물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는 시장 후보로서 약속한 공약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구ㆍ유물은 작지 않은 규모다. 발굴조사가 최근 마무리된 만큼 박물관 건립은 연말까지 건립 기본계획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석실분 37기가 밀집한 2만666㎡ 부지를 역사박물관으로 조성하겠다. 고분들은 현지 존치하고 추가로 산책로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감일지구 조성사업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복안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의사를 적극 반영해 모두가 기억하고 즐길 수 있는 하남이 되도록 하겠다.
-감일지구에서 발견된 유물 등으로 백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공공기관과 시민, 전문가 등이 함께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일은 시 단독으로 할 수 없다. 관 주도의 역사적 정체성 찾기는 필연적으로 이웃나라나 이웃 지자체와 불화를 일으키고, 결국은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일지구 역사박물관 건립뿐 아니라 관내에 소재한 각종 백제 유적을 연계한 역사학습, 역사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시민이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시가 추구하는 ‘역사문화레저도시’구축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하남=강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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