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국회의 예산심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팍팍한 서민의 삶을 살펴야 하는 국회의 예산심의가 그간은 여론전만을 펼치다가 결국 법정 시한 막판에 이르러 졸속심의에 그쳤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지난 5일 예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한 주먹도 안 되는 게”, “나가서 붙어” 등 막말을 퍼부었던 여야 의원의 볼썽사나운 다툼에 국민은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는 국회의 예산심사에 대한 무책임과 무능력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전년도의 세입ㆍ세출 결산서에 대한 심의 결과를 꼼꼼히 분석해 질의하는 체계성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고함과 삿대질만 난무하는, 예산심의를 준비 못 한 무책임이 결국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을 질타와 추궁뿐인 정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헌법 54조는 국회의 예산안 처리 마감일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으로 못 박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 심의였던 지난해 법정 시한보다 나흘 늦게 국회 문턱을 넘었다. 입법부인 국회가 헌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마련된 이후 법정 시한 내 국회가 예산안을 통과한 것은 일곱 차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시간에 쫓겨 막판 합의를 서두르다 보니 여야 간 주고받기 식 졸속 심의가 진행됐고, 예산안에 대한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통과돼 누더기 예산이 됐다는 비판이 일기 일쑤였다.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에서 심의의 흔적이 전혀 없었던 51개 사업 중 52.9%가 국토부 소관이었고, 그중에 92.2%가 지역구 사업이었다는 한 언론의 보도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뉴스였다.
더욱더 큰 문제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여야의 몰염치한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시절이었던 2016년 정부의 일방적 예산 편성과 집행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해야 된다며, 정부예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야당에서 여당으로 입장이 바뀐 뒤에는 야권의 발목 잡기를 비판하며 정부예산을 총력 사수하는 발언들만 눈에 띄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아동수당 정책을 비판하며 소득 상위 10% 가정은 제외하고 아동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올해 아동수당은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수용해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됐다. 그러나 야당이 되자 입장을 급선회해 출산장려금 2천만 원 및 아동수당 30만 원 정책을 들고 나왔다.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을만한 대목이다.
국회와 국회의원은 입법권과 함께 예산심의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책무다. 정치공세와 극한대치 졸속ㆍ부실심사가 지속해서는 안 된다. 국가 예산은 국민의 팍팍한 삶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다뤄야 한다. 남은 기간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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