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대화 중이다. A가 B에게 지금 몇 시냐고 시각을 묻는다. 그러자 B는 A의 손목에 있던 시계를 들춰내 자기에게 달라고 말한다. 시계를 건네받은 B는 시각을 읽어 주고는, 그 시계를 자기가 차고 떠난다.
다소 각색되었지만, 피터 블록(Peter Block)이 저술한 ‘오점 없는 컨설팅(Flawless Consulting)’의 첫 장에 나오는 삽화다. A는 고객이고, B는 A에게 사업상 이슈를 자문해 주는 경영컨설턴트다. 얼핏 봐도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컨설턴트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고객이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 및 해결책을 시계와 시각에 빗댄 점이 흥미롭고, 어느 기업에서나 통하는 엇비슷한 결과물을 던져주고 떠나는 컨설턴트의 소용없는 모습이 실감 난다.
항간에 인기 절정인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입시컨설턴트가 주목받고 있다. 둘러보니 중고차컨설턴트, 부동산컨설턴트 등, 말 그대로 컨설턴트가 만연하는 사회다. 앞선 경험과 노하우를 주고받는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으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장래를 논의하거나 팀장이 팀원과 업무를 협의할 때도 궁극적인 두 가지 입장은 컨설턴트와 고객이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컨설팅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피터 블록은 컨설턴트에게서 오점을 찾았지만, 컨설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먼저 투명성이다. 혼자 모든 일을 해내던 단조로운 시대는 지났다. 내, 외부를 막론하고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개방성이 현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의 기초이다. 다시, 개방성의 시작은 투명성이다. 부정과 오류를 감추려 들면 개방성은 위축되고 협력과 참여는 왜곡되거나 쭈그러들 뿐이다.
피터 블록의 만담에는 “지금이 몇 시였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대놓고 질문하는 컨설턴트도 등장한다. 고객이 원한다면 사실조차 왜곡할 태세다. 투명성 없는 고객은 컨설팅 효과가 반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몰지각한 컨설턴트와 결탁할 수도 있다.
2001년 엔론의 몰락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엔론은 당시 경영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굴지의 기업이었다. 개리 하멜(Gary Hamel)을 비롯한 경영구루들이 엔론의 성장가능성과 기업가정신을 칭송했다. 그러나 희대의 분식회계라는 오명을 남기고 파산한다. 여기에 아더앤더슨이라는 회계법인이 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자산과 실적을 부풀리는 일을 도왔다. 사태가 불거지자 심지어 관련 문서를 파기해 버리는 비리를 자행해 원성을 샀다.
다음으로 주체성을 들고 싶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다는 주도적 의지이다. 주체성이 결여되면,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그 정보에 의지하게 된다. 일류를 본받겠다고 벤치마킹이나 모범사례에 몰두하지만, 여건과 맥락이 다르므로 자신에게 적합할 리 없고 실행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정답만 손쉽게 얻으려는 조바심은, 과정에 천착한 해답을 무시한다. 현란한 보고서, 고도의 분석기법에 매료되지 말고, 실행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스로의 상태, 수준, 환경을 직시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졸부는 “청소 깨끗하게 부탁합니다”하고 외출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오늘도 깔끔하게 부탁 드리고요, 특별히 전등갓과 커튼 챙겨봐 주세요”라고 콕 찍어 요청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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