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장애인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한국해양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농아인들의 축구 경기를 보게 됐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표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지하게 경쟁하면서도 축구라는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문득 그들이 나누는 손의 대화가 궁금해졌다. 나도 배워서 그들과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경기도농아인협회 안산시지회를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나는 협회 부설 수어통역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게 됐다.

고 장영희 교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기대고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이 돼 보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고 했다. 위원장으로서의 십 년 세월은 내가 농아인으로 살아보는 연습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이라면 도움을 줘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제안했다. 받는 것에 익숙한 그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존감이 높아졌고, 자부심과 보람이 가득했다.

그리고 장애인은 남이 아니다. 누군가의 어머니ㆍ아버지고, 누군가의 형제·자매며, 누군가의 친구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때 더불어 사는 우리가 된다. 나 역시도 우리 지역 농아인들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이렇게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 덕분이었다.

가족의 마음이면 여러 가지 문제도 보인다. 수어는 이제 법적 언어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활용할 정도로 널리 확산해 있지 않다. 아직도 농아인들은 병원에 갈 때, 학교에 자녀 상담하러 갈 때 등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수어통역의 수요는 많으나 통역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수어교육원이 절실했다. 그러한 필요성을 알리고 설득하는데 내 경험을 보탤 수 있었다. 그 결과 재작년에 전국 최초로 경기도에 수어교육원이 들어서서 뿌듯하다.

교육에 관심이 많던 나는 농아인 2세가 수어로 소통하면서 음성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어휘력이 부족해지는 현장의 어려움도 알게 됐다. 그러한 문제 해결 방법은 아직도 찾고 있다. 마음 가는데 몸도 간다. 관심이 있어야 정책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담긴다. 정치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사회적 약자,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스며들어서 그들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 경기도의회 1층에는 발달장애인 자녀와 엄마들이 함께 운영하는 ‘북카페 한그루’가 있다. 도민의 뜻을 받드는 민의의 전당에 이런 북카페가 들어선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북카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는 현장 교과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은 우리 경기도의원들이나 공직자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는 가족이고 이웃이다.

‘장애인의 날’이 들어 있는 4월이다. 장애인, 그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이웃이다.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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