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잘 버는 ‘팔자 좋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주변에 많은 사람이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세상의 1%쯤 되는 건지 좀체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형편과 내 능력에 맞추다 보니, 생각하지 않았는데 전망이 좋다 하니, 그것도 아니면 그냥 어찌어찌 하다 보니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제의 웰메이드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쏟아낸 명대사는 많았지만, 많은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며 위로와 공감을 선물했던 명대사는 1회부터 마음에 콕 박혔다. 여주인공이 호감을 느끼게 된 남성에게 열등감으로 못난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상처받고 울 때 그 어머니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난 거랑 잘 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못난 놈이라도 잘난 것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 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진짜 잘 사는 거야. 잘난 거는 타고나야 하지만 잘 사는 거는 네 하기 나름이라고.”
직업 자체가 그 사람의 성공 기준이 되거나 잘 살고 있다는 측정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그 일에 임하는 자세와 가치관은 중요하다. 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하는 동안은 즐겁게 하려고 하고 잘해보고 싶다는 바탕 생각이 그를 그 직업 안에서 성장시키고 결국 만족의 길에 다다르게 한다. 그건 자신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곳에서 길이 열린다.
요리방송, 먹방이 이렇게 트렌드가 되기 전, 크게 인기 있던 웹툰이 있다. 정다정 작가의 <역전! 야매요리>다. 음식의 맛을 보장할 수 없는 요리법을 매주 소개했는데, 계량 따위 하지 않고 아빠 밥숟갈로 푹푹 퍼 넣고 이 재료가 없으면 곁에 있는 다른 재료를 막 넣고, 조리하다가 너무 익었다 싶으면 진로 변경, 본래 하던 요리를 버리고 갑자기 다른 요리로 빠지는 일은 다반사다. 요리는 곧잘 산으로 가고, 가족들은 그의 요리를 먹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한다. 어지럽혀진 부엌에서 도망이라도 칠라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할 길 없고, 달걀찜 하나 만들려고 달걀 한 판 다 쓰고 난 부엌은 폭발사건 현장이다. 이 만화의 매력은 요리하기를 즐기는 자의 “좀 그러면 어때?” 하는 자기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작가는 “20대가 야매 아니고는 뭘 할 수 있겠나?”라고 묻는다. 무수한 실패담이 바로 ‘야매’의 맛이고 아주 맛있게 성공한 이야기가 야매의 ‘역전’이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방법도 터득하고 점점 작가의 요리 실력은 좋아져서 프로급이 되지 않았을까?
어떤 일이든 소신껏 하면서 자기 힘을 길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뭐든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열정도 즐거움도 잃어버리면서 더 잘할 가능성의 동력을 잃기 쉽다. 주변 사람이나 조직에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스타일을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본과 원칙은 지키되 방법적인 면에서 조금 더 나간 흥미로운 상상과 열정을 녹여내는 것이다. 한번 이렇게 해볼까? 안 하던 방법을 써볼까? 다른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좀 그러면 어때? 해보니까 좋잖아? 자기 안에 끊임없이 이렇게 말을 걸며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소소한 도전에 성공하다 보면 타인을 대할 때도 한결 유연해지고 여유와 포용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것이 결국 잘나게 태어나지 않았어도 잘 사는 한 가지 길이 될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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