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국 대통령 선거 도전자들

미국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엔젤(Angel)이라고 애칭한다. 백악관의 닉네임은 크라운(Crown)이다. 왕관을 뜻하는 이 단어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미국의 제헌회의가 열린 1787년의 그 뜨거웠던 여름, 필라델피아에 모인 건국의 아버지 중 일부는 당시 유럽처럼 ‘미합중국의 국왕’ 체제도 생각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2년 전이니 일면 수긍도 간다.

그러나 중론은 대통령제였다. 국왕에게 지나친 권력을 줘 폐단이 너무 많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초창기 미국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겼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제로 하되 권력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의회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미국 헌법의 특징 중 하나다. 백악관의 권력은 의회와 언론에 의해 적절히 견제를 받아왔다. 20세기를 거쳐 오면서 미국의 시대가 공고화되고,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이 되면서 백악관의 권력은 의회와 국민의 견제를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100명의 상원의원과 50명의 주지사 그리고 야심 찬 각료들은 언제라도 백악관의 주인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 정치지도자가 중요하다. 전 세계 국가 지도자들에게, 지구 도처의 시민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은 일찍부터 언론의 주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백악관 입성을 주시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현직 대통령으로서 수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강한 메시지를 들고 취임에 성공했던 그가 연임 도전을 앞두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부각시킬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힐난하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트럼프식의 성취를 강조할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모험의 서사시이며, 도전하는 미국인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해 온 그가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예의 득의에 차 있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은 노병은 죽지 않고 건재할 뿐이다는 새로운 모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린든 B. 존슨 이후 가장 노련한 의회 정치인인 그는 회담장과 대중 앞에서도 자료ㆍ원고가 필요없는 인물이다. 40대 중반에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가 80세를 목전에 둔 지금 도전자로서는 기개 면에서건, 경륜 차원에서건 손색은 없어 보인다.

바이든을 추격하고 있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렌은 진보진영에 특히 호소력이 있다. 232년 전 코네티컷의 대표였던 로저 셔먼이 필라델피아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것처럼, 그녀는 “그대가 소수에 속해 있을 때, 나가서 말하라”는 명언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월가(Wall Street)의 구체제부터 고치겠다는 매사추세츠 여성 상원의원이 영원한 상원의원 바이든을 제치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과 워렌 뒤에서 역주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는 지명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도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자신의 정치철학이 분명한 그는 도전자인 것만으로도 스토리가 충분한 멋진 인생이다.

미국의 시대가 지속하면서 초강대국에 대한 경원(敬遠)의 시선도 많지만, 미국은 과학적 합리주의가 숭상된 시기가 있었고, 결단을 해야 할 시점에 주저하지 않은 지도력도 있었으며, 지금도 도전의 정신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챌린저호가 산산이 부서지고 나서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일성(一聲)은 간단명료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We will go on).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