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평화경제’의 시험대, 2032 서울-평양 올림픽

지금 한반도는 격동기를 지나고 있다. 동북아 지정학의 구조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은 물론이고,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등 초강대국들의 첨예한 대치 국면에 한반도가 놓여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대립하는 기존 구도를 탈피하고,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교량으로서 한반도의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 동북아에서 오랜 세월 지속된 지리정치학적 갈등을 이제는 지리경제학적 연결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남북 두 정상이 약속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최근 북한은 거친 표현으로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앞두고 샅바 싸움을 하는 것 같다. 미국 입장에서도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해 본다면 올해 안에 진전된 조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황 변화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국제정치 환경과는 별도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은 꾸준히 준비하고 진행돼야 한다.

답답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의 꿈으로부터 접근해보자. 앞으로 한반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남북한의 경제교류와 협력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기회가 우리 앞에 주어졌다. 바로 2032 서울-평양 올림픽이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의 4조 2항을 살펴보자. “남과 북은 2020년 하계올림픽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며,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공동개최를 유치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2032년 서울과 평양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서로 떨어진 두 도시가 아니라 통합된 도시 네트워크로 형성된 하나의 광역경제권, 즉 ‘서울-평양 메가시티’로 발전된 상태를 꿈꿔 보자. 신(新)경의선 고속철과 GTX 연장선은 서울을 출발해 개성과 해주를 지나 남포, 평양 등 북한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게 된다. 첨단 도시운영 인프라와 시스템에 의해 방문자들은 마치 잘 구성된 하나의 도시를 체험하는 듯 느끼게 될 것이다.

서울-평양 메가시티의 여러 도시는 올림픽 경기를 위한 스포츠 시설만이 아니라 컨벤션·관광·물류·문화 등 다양한 산업분야의 남북한 협력 거점으로 성장할 것이다. 남북한 접경에 있는 개성은 올림픽 행사를 위한 남북공동준비위원회와 컨트롤센터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개성공단 2단계는 생산시설 위주의 기존 계획을 변경해 올림픽을 지원하는 회의장·호텔·공연장·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고, 향후 판문점·DMZ와 연계해 MICE 산업 중심 평화도시를 육성하는 대안도 가능하다.

미래 한반도의 성장을 위한 4차 산업혁명 분야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 계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올림픽 단지를 순환하는 자율주행 셔틀뿐만 아니라 서울과 평양을 잇는 자율주행 관광버스, 대동강 수질개선을 위한 인공지능 센서와 하수관리 시스템, 물류·교통 신호체계와 인공지능 환승제어, 테러방지 및 안전보안 시스템 등 첨단 도시운영 인프라를 남북이 함께 구축하고 북한에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남북이 공동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상황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서울-평양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교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울ㆍ인천ㆍ경기와 평양ㆍ남포ㆍ해주ㆍ개성의 인프라를 연결하고 서울-평양 메가시티의 운영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경제’의 테스트베드를 만드는 일이다.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실행해 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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