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세렝게티에서 깨우침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보았다.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일들과 여러 동물의 특성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탐험에 대한 짙은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곱 살의 아들과 언젠가는 세렝게티를 함께 가자는 황당한 약속마저 하고 말았다. 그런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의 눈으로 찾아낸 것이 있다.

생명이 샘솟던 동물의 왕국에도 혹독한 시절은 반드시 오게 된다. 비가 줄고 대지가 메마르면서 풀을 먹이로 하는 누떼는 대이동을 하게 된다. 생존을 향한 누떼의 대이동 앞에는 어김없이 강이 나타나고 좁은 강폭을 찾아가다 보면 급류와 악어가 갈 길을 막아서기 마련이다. 망설이고 주저하던 누떼는 용기 있는 한 마리의 시도를 따라 동시에 차례대로 강으로 뛰어든다. 더러는 악어에게 물려 죽고 서로 등쌀에 밀리거나 밟혀 급류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에겐 저 방법밖에는 없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도 모두가 한곳으로 동시에 뛰어가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학교가 아닐까 싶다. 각자의 특성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한쪽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세렝게티 초원의 누떼처럼 모두의 아이들은 학교로 간다. 1등을 살리기 위해 깔리고 밟히는 꼴찌에겐 관심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아이들을 향해 “나도 할 만큼 했다”는 최소한의 위로를 부모는 갖게 하고 아이들은 주체성이나 창의력은 뒤로한 채 돈 잘 버는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교육 현실은 안전한가. 작금에 대두되는 입시제도의 손질만으로 불안한 학생과 학부모를 이해시키고 갈등을 종식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 사회로 나가는 데 필요한 교육의 기간은 20여 년, 연간 사교육비 19조 원, 학생의 70%가 사교육을 받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우리나라의 교육기간은 일생의 4분의 1 이상을 배우는데 보낸다. 막대한 예산의 효율성을 위해선 다양한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배움의 창구가 학교뿐이라면 옳은가. 세상 전부가 학교여야 하지 않은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가져야 할 다양성과 창의력이 교육으로 다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진화의 길로 이끄는 사람들은 현실과 맞선 돌연변이 적 삶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맹수의 왕인 사자나 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자식 교육법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부모에 의해 훈육되고 길러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가장 소중한 자녀의 미래를 위한 교육을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남에게 맡기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나보다 내 자식을 더 잘 가르칠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유재석 경기도일자리재단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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