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1914년 12월24일 저녁 플랑드르 전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100m 거리를 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치열한 총격전으로 많은 동료가 죽었고, 남은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군 병사 하나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 노랫소리가 어둡고 긴 전선의 참호 위로 울려 퍼졌다.
노래가 몇 곡째 이어지자 말없이 귀를 기울이던 병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노래는 곧 합창이 되었다. 이상한 감동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어리둥절하던 영국군 진영에서 박수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러자 독일군 병사 하나가 몸을 드러낸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도 총을 쏘지 않을 테니 너희도 총을 쏘지 마라”는 것이었다. 한 병사가 참호 위에 쌓아올린 흉벽 위에 불을 밝힌 초를 올려놓자 잠시 후 곳곳에 초가 밝혀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양 진영의 병사들은 그때부터 총을 내려놓았다. 휴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후에 서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축구도 함께 했다. 병사들을 괴롭히는 이와 쥐를 퇴치하는 비법도 서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두 전선 사이 무인지대(No man’s land)에 널려 있던 시신들을 함께 묻어주었다. 만나고 보니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그 전쟁은 자기들의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도 자각했다. 서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이 무려 약 7천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이런 엄청난 전쟁을 치르면서 세계는 평화를 갈망하게 되었다.
올 한해도 갈등과 분쟁, 증오가 범람했던 시간이었다. 정말 한해를 돌아보며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단어가 있다면 ‘평화’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운영하는 ‘평화교육연수원’이 있다. 이곳은 포천 산정호수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개인의 평화, 교육공동체의 평화를 배우는 공간이다. 교직원들의 휴와 치유, 회복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연수원이다. 경기도 근교에 있어서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이곳에 있기만 해도 회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최근 이곳에 많은 교직원이 연수받고 싶어 하고 있다. 그 이유는 평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거리를 떠도는 실직자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 평화 세상을 열고자 일하다가 고난을 겪는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굴욕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 모두에게 평화를 갈망한다. 학교 현장에서 관계로 인해 상처받은 학생들, 그리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며 삶의 희망조차도 내려놓은 학생들, 서열화된 교육으로 학습 된 무기력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평화가 찾아와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이 저물고 2020년 경자년이 시작된다. 갈등을 넘어 평화의 시대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고 실천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처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되기를 소망한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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