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4·15 총선, 새로운 시대로 가는 중대선거가 되길

오현순
오현순

4ㆍ15 총선은 입법부를 선출하는 선거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입법부를 선출하는 선거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 발표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선거공약 중 입법에 관련한 공약은 15.78%에 불과했다. 국가대표로서의 국정공약도 23.28%에 그쳤다. 이에 반해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며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던 산타클로스 공약은 52.53%나 됐다. 하드웨어 중심의 지역개발공약은 75.47%에 달했다. 일 잘하는 국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와 달리 제대로 된 후보를 선출할 수 있을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지난 16일까지 4·15 총선을 준비하는 예비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와 의정보고회 등이 한창이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출판기념회, 의정보고, 방송 출연 등이 총선 90일 전까지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이 입법부인 국회의원이 되고자 선거에 나섰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야기로 가득한 자서전적인 도서와 지역예산을 따냈다는 자찬 일색의 의정보고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입법을 중심으로 하는 의정 활동계획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은 것은 언제나 시민이었다. 제도정치권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해 입법부로 거듭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번 총선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18세 선거권이 허용되는 등 새로운 선거법으로 치러지는 중대한 선거이다. 하지만 새로운 선거법의 취지에서 벗어나 이번에도 정치공학적인 셈법만 앞세우며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된 입법부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할 사람들은 오로지 유권자와 국민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책무이기도 하다.

최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아무에게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고립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이 무참히 무너지는 상황을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다. 고립과 생활고 모두 당사자의 무능과 무기력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제도적 결함이나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꾸기 위한 국회의 입법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또한 국회가 정쟁의 장(場)이 아닌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정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에 따른 실업과 소득격차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위기, 부동산 문제, 고령화ㆍ저출생 등 산적한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입법으로 일하는 따뜻한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선거 때마다 물갈이, 판갈이, 불판갈이 등을 내세웠지만 국회의원들의 얼굴만 바뀌었지 한국정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4ㆍ15총선에서는 정치권의 원칙 없는 물갈이에 경도되기보다 사회의 현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입법부를 선출해 보자.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로 가는 정초선거(定礎選擧),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중대선거(重大選擧)가 돼야 한다. 유권자들의 절체절명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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