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전염병과 통계

“도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지의 열매를 맺는 이삭에도, 풀을 뜯는 소 떼에게도, 여인의 산고에도 죽음이 만연해 있나이다.” 2500년 전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전염병의 참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소포클레스가 활동했던 도시국가 아테네는 두 번의 전염병으로 인구는 많이 감소했고 국력도 쇠퇴했다. 당대를 살았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전염병의 증상과 경과 그리고 결과를 실증적으로 기록했지만,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단지 환자들을 돌보던 의사들이 가장 많이 죽었고, 적대 관계에 있었던 스파르타인들이 아테네의 우물에 독을 탔다는 풍문을 적어 놓았다.

수 세기 동안 인간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신이 내린 벌이라거나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독 같은 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17세기 들어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발견하고 질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하면서 전염병은 하나씩 극복되기 시작했다.

현대의 전문가들은 고대 아테네의 기록을 분석하고 역학조사를 통해 그 당시의 역병이 발진티푸스와 유사한 전염병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의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이런 전염병들은 사라지고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명확하다.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KOSIS)에 올라온 2018년 법정감염병 발생 건수를 보면 제1군 전염병인 장티푸스는 213건, 콜레라는 단 2건만 발생했고, 제3군 전염병으로 분류된 발진티푸스는 한 건도 발병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전염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동수단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염병의 확산 범위와 전달 속도는 그만큼 더 빨라졌고, 새로운 전염병은 한 도시 한 국가를 넘어 세계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외부의 위협에 직면할 때 말미잘의 촉수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심장이 급하게 뛰고, 사지가 경직된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자기보호 방식을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라고 불렀다.

그러나 전염병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과 가짜뉴스가 만들어 낸 혐오는 구별해야 한다. 스파르타인들의 독과 같은 가짜뉴스는 무분별한 폭력일 뿐이다. 스티븐 핑커의 지적처럼 이 세상은 선조들에게는 낙원처럼 보일지 모르는 작은 공존의 축복 속에 있다.

이 작은 공존의 축복을 위해서는 혐오를 동반한 가짜뉴스를 단호히 거부하고 방역의 최전선에 선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적극적인 협조를 보내야 한다. 또한, 재난 상황에도 국가 운영에 꼭 필요한 통계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통계청 직원들에게도 관심을 부탁드린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