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화영토 지평 넓혀나가야 할 때

지난해 10월경 문희상 국회의장은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석유 부국,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하여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국이 튀르크어족 국가협력평의회(Cooperation Council of Turkic-Speaking States)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 평의회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 측은 문 의장의 언급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튀르크어족 국가협력평의회는 의장국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하여 터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정회원국이며 헝가리, 투르크메니스탄이 준회원국이다. 인구 1억 5천만 명의 규모인데 여기에 한국이 가입하게 되면 2억 명을 아우르는 국제사회에서 매우 의미 있는 규모의 문화협의체가 되는 셈이다.

튀르크족들은 우리 역사에서는 북방 돌궐족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동쪽으로는 한반도 북방 만주, 연해주 벌판에서 서쪽으로는 러시아 남부, 터키, 헝가리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인데 중국 만리장성 이북 지역의 이른바 ‘사슴 루트’를 통해 타지역과 교역을 하고 문화를 전파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민족이다. 오늘날에는 터키가 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만주 벌판에 근거를 둔 고구려는 이들과 손잡고 선린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이었던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튀르크족 관련국가 간의 교류 협력 필요성이 앞으로 더욱 증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이 협의체 가입의사 표명은 매우 시의 적절했고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데 유의미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이 현안을 추진하고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외교부의 반응은 매우 미온적으로 보여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 우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는 문 의장이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약속한 이 협의체 준회원 가입 문제에 대해 이 협의체에 대한 성격 파악과 참여 시의 예산 확보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을 뿐이라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이다. 일국의 국가의전 서열 2위의 국회의장이 상대국 국가 원수의 면전에서 약속한 사안을 실무 기관인 외교부 실무자 선에서 깔아뭉개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가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4관왕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고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어 있는 등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해외로 문화 영토를 비약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한민족 문화르네상스를 만끽하고 있다. 정부는 문화 관련 국제연대에 적극 참여하는 등 이 분위기를 잘 살려 나가야 하지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

장준영 前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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