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일본의 재난지원금과 마이넘버 제도

코로나19에 따른 소비위축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재난 지원금 지급 과정을 보면 국민이 신용카드 회사 등을 통해 간단한 확인과정을 거쳐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 후 며칠 만에 그 지원금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재난지원금을 집행해 실제 개인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의 행정과 금융시스템은 짧은 기간 안에 재난지원금의 지급결정과 지급을 가능하게 했다. 1968년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일부 불법 유출 등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한국의 행정ㆍ금융의 효율성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19에 따른 소비위축에 대응해 1인당 10만엔의 ‘특별정액급부금’(한국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금액은 한국보다 많지만 실제로 개인이 재난지원금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한국에 비해서 일본의 행정시스템은 전산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고, 재난지원금의 신청과 지급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으려면 우편신청을 하거나 온라인 신청을 해야 한다. 온라인 신청을 위해서는 반드시 ‘마이넘버카드’(한국의 주민등록카드)가 있어야 하지만, 일본의 마이넘버카드 보급률(2020년 1월15일 기준)은 14.9%에 불과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마이넘버카드가 있으면 인터넷으로 신속하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을 했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마이넘버카드 신청을 하기 위해서 구청에 몰려들었다. 정부가 마이넘버카드 발급을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둔 것은 개인들의 마이넘버제도에 대한 우려가 아직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마이넘버제도의 도입에 대해 전쟁 수행 시에 이루어진 정부에 의한 개인에 대한 통제를 연상했고, 이것이 국가에 의한 국민에 대한 감시ㆍ관리로 연결될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개인 신분확인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3년 8월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가 최초이다. ‘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에는 지자체 별로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등이 기재돼 전국 네트워크화 되어 전국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본인확인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존에는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이 없는 일본인은 본인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 건강보험증을 활용할 정도였다. 단, 당시 일부 지자체는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등 그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2007년 ‘잃어버린 연금기록’의 문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민번호제도의 필요성을 재인식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연금기록에는 많은 기재누락, 오류 등이 존재한 것이다. ‘잃어버린 연금기록’은 일본 행정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6년 1월부터 국가에 의해서 전 국민에게 개인별로 식별 번호를 부여한 마이넘버제도가 시행됐다. 2018년부터는 은행이 예금을 마이넘버로 연결지어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이는 개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일본에서 마이넘버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불식시키고, 마이넘버제도가 사회보장, 조세, 금융 등의 효율화 증진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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