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커뮤니티] 그들이 눈 앞의 폭행에 고개를 돌리는 이유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눈 앞에서 누군가 폭행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하면 달려가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왜 눈 앞에서 벌어지는 타인의 위험에 눈을 감게 됐을까.

지난 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르는 여자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약 3년 전에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제목만 봐도 글쓴이가 누군가를 도와줬다가 오히려 난감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글에 따르면 글쓴이는 친구와 동네 공원에서 운동을 하던 중 여고생이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상한 남자가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져갈 때쯤 여고생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글쓴이와 친구는 곧장 달려갔고, 다행히 여고생을 뒤따르던 수상한 남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모르는 여자를 구하려다 폭행범으로 몰렸다는 글을 봤던 사실이 떠올랐고, 피해 여고생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때마침 경찰이 도착했고, 어느 부부가 여고생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을 해줬다. 얼마 후, 형사들이 CCTV를 확보했지만, 화면이 어두워 식별이 어려웠고 글쓴이는 지구대로 가 진술서를 썼다.

그러던 중 피해 여고생의 친구가 지구대로 와 피해 사실을 경찰에게 진술했다. 그리고 피해 여고생과 어머니가 지구대에 도착했다. 글쓴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만약 피해자가 없었다면 폭행범으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 어머니는 "소문나면 안 된다"며 쉬쉬하려 했고, 글쓴이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일로 글쓴이는 "가족, 여자친구 아니면 그냥 신고만 해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다행스럽게도 글쓴이가 겪은 사건은 해피엔딩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경찰서에서 포상금을 지급했고, 글쓴이는 친구와 사이좋게 나눴다. 그러나 글쓴이가 자칫 폭행범으로 몰릴 뻔한 황당함에 대한 보상으로는 왠지 부족해 보였다.

지난 26일 서울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주변 택시 기사 등에게 용의자를 잡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방관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피해자의 도움 요청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 데는 앞서 언급한 사연들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법에서는 타인이 입는 부당한 침해를 막으려다 가해자와 폭행에 휘말린 경우 정당방위로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개입했다가 도움을 주려던 이들이 '쌍방폭행'에 휘말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폭력이나 강간 등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어도 도와주면 안된다는 내용의 글들이 꾸준히 올라온다. 결국 "나서봤자 험한 꼴만 당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고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14년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이라는 연구를 통해 소극적 정당방위 인정이 시민의 법의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결국, 올바른 사법질서를 세우는 것만이 진정 어려움이 처한 이들을 도울 근본적인 방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할 필요가 있다.

장영준 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