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장밋빛과 흙빛 사이

현재 97세인 젊은 노인 헨리 키신저. 그는 연부역강하면서 아직도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국제정치질서를 명징하게 논한다. 남과 북에 훈풍과 냉기가 오가는 현실을 보면서 그의 저서가 뇌리를 스친다. 키신저 박사가 ‘회복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듯이, 한국인들은 연천 인근에 평화공원이 조성되고, 파주 출판도시에 북한의 청소년들이 와서 견학하고 독서하기를 염원한다.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정치 기류는 평온한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이 잠정 종료된 1953년 7월27일 이후 지금까지 67년 기간은 상대적인 평화의 시기였다. 냉전의 시기도 있었고, 신냉전이란 표현도 있지만 불완전한 평화의 시대였다. 북한의 적지 않은 도발과 이에 따른 남북미 간의 크고 작은 긴장은 있었지만 극적인 충돌은 없었다. 2006년 이후 6번이나 계속된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함께 동북아에서의 불안정이 이어지면서도 현상유지의 기본 틀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에 그늘도 있고 빛도 있다. 밝음의 조도는 주변국들의 이해와 지혜에 달렸다. 우리 모두가 품는 의지의 용량이 클수록 조명이 밝아질 것이다. 지축을 흔들고 지표를 뒤덮는 큰 전쟁은 국지전에서 촉발되는 경우를 20세기만 해도 몇 차례 경험했다. 야산의 조그만 불씨가 산맥 전체를 태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북핵 문제는 남과 북만의 아젠다가 아니고, 비핵화는 한반도만의 이슈가 아니다. 북한의 자부인 금강산의 맑은 물 대신 핵 물질과 미사일 기술이 중동으로 수출됐다는 국제사회의 추정과 우려 속에 이미 유엔이 경계하는 비확산의 이슈로 자리 잡혀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는 세계평화와 직결된 논제이기 때문에 이해 관계국 모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갖는 글로벌한 성격을 워싱턴은 진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소극적인 전략적 인내보다 적극적인 관여정책이 촉구된다. 진정성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에서부터 필요하다.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몽된 국가이익’의 현수막을 내다 걸어야 할 때이다.

메모 습관이 투철한 볼턴 전 안보보좌관이 적시했듯이, 도쿄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합창에 균열음을 내고 있다. “개화된 국익”을 추구할 때 일본의 평화헌법 9조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영속적인 평화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일본헌법 9조의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해 <9조회(會)>를 만든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빛나는 정신이 일본 내 소수의견으로만 남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동아시아의 안정된 평화와 세계의 밝은 미래에 시금석이다.

한반도를 비추는 조명의 장밋빛과 흙빛 사이에서 스웨덴 듀엣 가수 아달(Adahl)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사가 귓전을 울린다. 오랜 시간 분단된 이 나라 이제 회복이 필요합니다. 한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국경이 사라지기를. 갈라진 이 땅이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기를. 북유럽에서 들려오는 이 조용한 노래가 이제 한반도 주변국들이 함께 부르는 중창으로, 머지않아 전 세계인이 모두 함께 부르는 고귀한 합창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는 시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품는 빛나는 의지에 달렸다. DMZ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멋진 공연장도 만들어 미국 가수 ‘앨버트 하몬드’를 초빙해 노래 한 곡을 청해야겠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를 온몸으로 부르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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