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솔직한 묘비명

묘지명(墓誌銘)이란 죽은 자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로 대개 돌에 새겨 함께 묻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의 묘지명은 살아있을 때 미리 써놓을 수밖에 없다. 죽은 다음에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의 ‘자찬(自撰:스스로 쓴) 묘지명’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반추해 볼 수 있는 고백서이자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 시대 묘지명들은 대부분 남이 써준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요절한 누님의 상여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해 읊은 묘지명은 조선 산문의 백미로 꼽힌다.

이에 반해 서양의 경우는 대부분 자신이 미리 써놨거나 자신의 저서나 한 말 중에서 그럴싸한 것을 뽑아 무덤 앞 묘비에 새긴다. 그래서 묘비명(墓碑銘:epitaph)이라고 부른다. 서양의 묘비명은 우리처럼 길지 않고 촌철살인이다. 생몰년과 함께 한두 줄 간단하게 표기한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묘비명은 자신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피츠제럴드가 이렇게 하라고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대목을 따온 건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서양의 작가 묘비명은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궁금하게 이끌어 읽게 만든다. 최근에 인터넷을 보다가 3년 전 타계한 미국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1926~2017)’가 쓴 묘비명을 알게 됐다. 플레이보이 창간 50주년(2004) 행사에서 미리 쓸 묘비명을 공개했다. 죽기 13년 전이다. “성(性)에 대한 우리의 유해하고 위선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또 그렇게 하는 동안에 많은 재미를 본 인물로 기억되기 바란다.” 확인해 본 결과 이 묘비명은 실제 헤프너의 묘비에는 없다. 유족들이 뺀 것인지 주위에서 말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헤프너의 미리 쓴 묘비명에 내가 감탄한 까닭은 딱 하나다. 솔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유명 인사가 죽으면 조사(弔辭)나 묘비명이 위선 그 자체다.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온통 자기 잘했다는 이야기뿐이다. 반성은커녕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러니 세월이 흘러도 치욕스런 돌덩이에 적힌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이 하루걸러 유명을 달리했다. 죽음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이다. 문 대통령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고 또다시 이념 전쟁으로 나라가 분열됐다. 분명한 것은 백 장군의 죽음과 박 시장의 죽음을 동렬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 두 사람도 묘비명이 생길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시 ‘묘비명’을 패러디해서 표현하자면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작은 묘비명에서 시작할 수 있다. 휴 헤프너의 묘비명처럼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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