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개망초의 항전

나는 공주였다

강가의 돌, 모래알만큼의 병력과 백성을 거느린 풀꽃왕별의 자손

척박한 땅을 거머쥐고 한 뼘씩 영토를 넓혀나가는 푸른 기운의 발걸음

여름날 개망초들의 깃발은 매일 승전보를 울린다

그 함성, 하늘까지 올라

졸던 비구름이 화들짝 놀라 소낙비 퍼붇는다

그런 날이면

하늘땅만큼 개망초들은 사기충천하는데

요즘 금요일마다 괴물이 출몰한다

그 괴물의 안경 너머로 눈이 깜빡일 때마다

개망초의 허리춤에서 시퍼런 피 쏟는다

나는 이 나라의 공주다

서둘러 푸른 병사들의 총에 모기와 독충을 장전시켜

발포 명령을 내린다

기습에 놀란

괴물은 아침도 거른 채 떠나고

학곡리 전투는 일주일간 잠정적 휴전이다.

 

 이정현

<계간문예>로 등단. 시집 <살아가는 즐거움>‚ <춤명상>. 서울시문학상 외 다수 수상.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문학과 창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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