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민주주의 퇴보와 국제정치

‘민주주의 평화이론’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는다”라는 일반법칙을 찾아내고 세계평화를 위한 대안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을 제시했다. 민주화를 분석한 「제3의 물결」에 따르면 20세기 중반 남유럽을 시작으로 남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벨벳혁명으로 불린 동유럽으로 이어진 민주화를 제3의 물결로 규정하고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21세기에 시작된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의 재스민 혁명은 제4의 물결로 확대되지 못하고 내전으로 좌절되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의 확산에 따라 세계적으로 군사적 충돌이 감소하는 가운데 중동만 여전히 분쟁의 화약고로 남아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민주화의 완성은 권위주의를 끝내는 정권교체뿐 아니라 시민이 주도하는 부패 청산, 인권과 삶의 질의 향상 그리고 정책 결정에 시민사회의 참여와 감시를 포함하는 제도의 안착을 의미한다. 시민의 통제를 받는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지도자가 실정을 감추고 여론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군사적 분쟁을 이용할 수 없기에 민주주의가 평화를 가능하게 한다. 2020년의 세계는 코로나19, 경기침체, 그리고 보호무역과 같은 국가주의의 확산에 따라 민주화의 역진과 국제분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퇴직 부동산 사업가 렌지쾅은 시진핑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비판했다가 엉뚱하게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1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러시아에서는 5선 출마를 준비하는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알려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소련 시절 개발된 신경작용제인 노비초크에 중독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경기 악화로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나오자 우편투표의 절차적 투명성을 구실로 선거 결과에 불복할 수 있다는 언급을 계속하면서 민주주의를 인질로 집권을 연장하려 한다.

세계적 리더를 자처하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기본가치로 지켜오던 미국의 일탈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의 중산층이 공동체의 선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민주당의 독선이라 생각한 주류 중산층의 반발이 트럼프 행정부를 출범할 수 있게 했다.

선거 막바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소식은 미국 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중산층의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 중·러에 더하여 미국의 민주주의 역진은 세계평화에 최대위협이 될 수 있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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