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네거티브 헤리티지, 부평캠프마켓

지난 14일 80여년 만에 반환된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개방식이 있었다. 1939년 일제강점기, 조선을 병참기지화 하면서 대륙 침략전쟁을 위한 병기를 제조하는 일본육군조병창으로 쓰이다 광복 이후에는 주한 미군의 군수지원사령부로 미군의 무기와 식량을 공급하는 보급창 역할을 했던 캠프마켓.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 미군 감축·이전이 시작되면서 1973년 폐쇄, 2002년 3월에 반환이 결정됐지만 반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던 금단의 땅이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12월 11일 정부는 주한미군과 부평 캠프마켓을 공식 반환하기로 최종 합의하면서 81년 만에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공간은 전체 44만여㎡ 부지 가운데 야구장·야외수영장·농구장 등으로 쓰였던 B구역(9만3천㎡)이다. 개방에 앞서 시는 부평구과 협의해 100여명의 인력을 투입, 시설 재정비와 담벼락 철거하고 개방한 출입구 주변에 캠프마켓의 과거를 기록한 스트리트 아트 갤러리 조성한 데 이어 캠프마켓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설치했다. 주한미군 쪽이 여전히 빵공장 등으로 쓰고 있는 23만㎡가량 용지 경계에는 울타리도 놓았다. 시는 우선 시민 휴식 공간 및 문화행사 공간으로 사용한 이후 시민 의견 수렴 과정 등을 거쳐 내년 말까지 캠프마켓의 활용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인천시민 입장에서 부평 미군기지의 반환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시민에게 하루 빨리 개방한 점 역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반환받은 토양오염 정화 문제와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또 일제강점기 한강 이남 최대의 병참기지라는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강제 징용된 약 1만명 조선인의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캠프마켓 내 완성된 총과 칼을 검사했다는 지하벙커가 실제 존재하는지, 부영공원에서 발견된 땅굴 입구는 과연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함봉산에 산재한 24개의 지하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 부평 미군기지 내 지하시설과 땅굴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조사가 필요하다. 군사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부평 캠프마켓. 아프고 어두운 역사지만,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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