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요즘 나에게 국가란

서정주 시인의 ‘마흔 다섯’이란 시가 있다. “마흔 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귀신을 기를만큼 지긋치는 못해도 처녀 귀신하고 상면(相面)은 되는 나이.” 시인이 말했던 나이는 지금 생각하면 60세 정도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 보면 누가 아무리 뭐라 해도 대강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더 나이 먹고도 철없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의’나 ‘비분강개’ 같은 단어가 건강에 해로운 것도 잘 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일임을 알기에 흐르는 강물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나와 내 주위 사람들도 편하다. 젊어서 군사 독재에 분노하고, 무능한 대통령에 거품을 물었던 것이 지금 와서 보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서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해본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자기 나라를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저 단순히 나라를 사랑한다는 식의 너무나 애매하고 막연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선 그 전에 어떤 자들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지 바르게 규명하고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삼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의로운 국가나 정의로운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훈아가 말한 소위 ‘위정자’들에게 통째로 영혼을 빼앗기고, 사고와 행동을 제한당하고, 자유와 존엄성을 잃고, 비참한 처지에 내몰리는 상황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정권이든 뻔뻔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고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는 즐비하다. 하지만 경중(輕重)의 문제였지 근본을 훼손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든, 안보든, 외교든, 모두 수단일 뿐 결국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 자체가 상실돼 버렸다. 운동권의 이상은 몽상으로 전락했다. 무엇에 관한 명분은 무성한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엉터리니 남은 것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억지와 궤변뿐이다.

세상이나 국가라는 것이 어차피 이런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순간 이 나라를 사유화하고 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자들의 승리에 가담하게 된다. 단테는 ‘신곡(神曲) 지옥편’에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나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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