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에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즐겨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1993년 MBC 가요대상을 거머쥔 히트곡이다. 바로 가수 김수희(67)가 부른 ‘애모’라는 가요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애모’의 마음을 노래했다. 특히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하는 문장은 애처롭기까지 해 공감을 일으켰다.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가 불편해할까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작아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남녀관계가 아닌 나라의 지도자 관계라면 사뭇 달라야 한다. 만일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지도자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애처로운 게 아니라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더욱이 우리와 이념과 가치가 다른 공산독재국가의 지도자들 앞에서라면 굴종으로까지 비칠 것이다.
지난 2017년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夢)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그 나라를 추켜세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 원수가 영토적인 의미라 해도 제 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겸양지덕이 아니다.
2003년 방중(訪中)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마오는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을 기획했고 대규모 파병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서기장은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고 했다. 중공군이 우리와 자유 우방 군인과 국민을 무수히 죽이고 영토를 침탈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정의의 승리인가. 그럼에도 이 정부의 누구 하나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다.
2018년 9월26일 이낙연 전 총리는 베트남 호찌민 전 주석의 거소를 찾아 “위대했으나 검소하셨고, 검소했으나 위대하셨다. 백성을 사랑하셨으며 백성의 사랑을 받으신 주석님의 삶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올해 전반기 김여정이 청와대를 향해 “저능, 강도, 바보, 철면피” 등 막말을 쏟아내고 개성 남북 공동연락소를 폭파했어도 한마디 말조차 못했다. 심지어 여권의 지도급 인사는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 9월엔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에 태웠다고 하는데도 한마디도 따지지 못한다.
공산독재자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아침이다.
김기호 둘하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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