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인간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긴 여운을 남긴다. 퇴근길 들르는 슈퍼마켓에는 상품이 충분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현관 앞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는 시장경제를 마비시킨다.
일부 국가에서 일어난 생필품 사재기의 원인도 불안과 공포이다. 사재기는 공급자의 창고에서 소비자의 집으로 보관 장소만 바뀌는 것이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공황 구매(panic buying)는 장기간에 걸쳐 발생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적인 식량위기는 다른 문제이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엔 산하의 세계식량기구(WFP)는 올해 초 코로나19에 신속한 대체가 없으면 2억7천만명이 기아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식량위기가 지역 분쟁이나 기후 변화에서 야기됐다면, 코로나 시대의 식량위기는 국경봉쇄에 따른 농어업 부문 이주노동자의 부족, 물류시스템의 마비, 대규모 수출국들의 일방적인 동결조치 등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은 짧은 시간 많이 먹는 ‘먹방’ 동영상을 단속하고, 음식점에서 ‘접시 비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많은 인구와 경제성장에 따른 곡물 수요 증가 등을 식량안보의 문제로 인식하고 쌀, 밀, 옥수수 등 ‘3대 곡물’ 경작지의 전용을 금지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은 농산물의 탈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수출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할 예정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중동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를 농업 부문에 투자하고, 싱가포르는 식품 관련 연구개발과 농업 생산성 향상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35%, 식용 목적의 식량자급률은 15.8%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등의 대규모 곡물 수출국들은 육류 자급률이 높고 채소, 과실류 자급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식용 곡류 자급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서인 농사직설(農事直設)을 편찬하면서 서문에 ‘농자, 천하국가지대본야(農者, 天下國家之大本也)라고 천명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하루하루가 급변하고 있지만, 선인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통계청은 오는 18일까지 농림어업총조사를 실시한다. 이번 조사는 국내외 정책 수요와 사회 변화상을 반영하여 ’지능형 농장(smart farm)’, ‘식생활 및 기후 변화에 따른 농작물 재배면적 변동’, ‘외국인력 고용 현황’ 등을 조사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든 시기이지만 선인의 큰 뜻을 되새기며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최정수 경인지방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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