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고약한 경자년(庚子年)을 떠나보내며

경자년 벽두 시작된 코로나19는 모든 일상에 듣도 보도 못한 영향을 미쳤다. 모든 것을 마냥 움츠리게만 했다. 이내 진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 해를 넘어선 지금까지 그 위세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국민의 한결같은 협조로 우리 방역이 전세계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편 역병으로 각종 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일부 살(殺)풍경은 더 한층 기승을 부려왔기에 유감이다. 각 사안마다 찬반으로 나뉘었다. 이념 등 허접한 선에 의해 둘로 가르고 극한 대립으로만 나아갔다.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은 내내 부정되었다. 그러기에 방역의 긴급함에도 이는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성찰하여 반드시 중지를 모아야 할 과제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과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불현듯 하나의 사실에 착안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언어에서의 분별(分別)이었다. 코로나19로 참 많은 신종 용어가 등장하였다. 역학 전문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코로나19, 팬데믹, PCR검사, 슈퍼 전파자. 방역 처치와 관련한 드라이브 수루, 워킹 스루, 덴탈 마스크, 코호트 격리. 이외에도 일상 변화와 관련한 뉴 노멀, 언택트,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블루, 코로나케이션, 웹미나 등등.

한데 이 용어에 대해 우리 모두가 즉시 이해하고 공동의 인식을 지향할 수 있을까. 대부분 영어 단어인데 이 용어가 불편한 사람은 없을까. 사실 필자도 어떤 용어는 처음 접하고 그 의미를 한참 궁리해야만 했었다. 때로는 인터넷 등을 검색하기도 했었다.

언어란 대상을 의미 있게 포착하는 존재의 눈이다. 그리고 그 포착된 의미로써 경험 세계를 구축하고 고유의 사고를 한다. 나아가 관련 정서도 형성한다. 우리의 존재 본질은 사람(삶앎)이다. 어떤 상황이든 성실한 삶을 살아내고 이의 성찰을 통해 앎을 얻는다. 또 이 앎을 실천하여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열어간다. 이러한 존재 본질이 모두에게서 구해지기 위해서 우리 언어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코로나 관련 용어도 반드시 우리 언어로 순화되어야만 했다. 신속함을 핑계로 외래어가 별다른 노력 없이 무분별하게 도입된다면 진정한 우리의 의미, 사고, 정서는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또 이해 여부에 따라 특정 계층만이 그 용어를 배타적으로 독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한해 더욱 두드러진 살풍경은 어찌 생각하면 일부 언어의 혼란과 분별에 의해 더 한층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누구나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우리 언어를 우선 마련하여야 한다. 연후 보다 진지한 소통에 주력하여야 한다. 작금 우리의 과제인 살풍경 해소는 이런 노력이 모아진다면 서서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