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장악했다.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도,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그 어떤 질병보다 큰 파괴력을 갖고 있음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속도와 집단 이성을 모토로 발전해 왔던 흐름이 꺾였듯, 언텍트(untact)란 단어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농촌도 예외가 아니다. 가뜩이나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데 코로나19가 가가호호 빗장을 굳게 잠가놓았다. 농한기인 겨울철이면 웃음꽃이 피던 시골 마을회관도 적막하기 그지없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 코앞이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와도 반길 수 없는 것이 작금의 농촌 풍경이다. ‘극단적 절망’이란 없다고 했던가. 역설적이긴 하지만 코로나19가 우리 농촌과 농업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농촌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고, 세계 곡물 공급망이 깨지면서 식량 안보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일 게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국토보존 기능과 지속가능한 환경유지 및 국민의 휴식공간 제공 등 다원적 기능을 갖춘 소중한 자원이자 보배다. 특히 기후환경 변화를 막는 효과가 큰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농업과 농촌은 흙이라는 무한 생산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 생명력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라는 유대적 신화를 맺고 있다. 사랑과 친절, 배려와 연민의 터전이 흙이라는 원형에 녹아 있기에 그렇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인과 많이 닮았다. 이타적 존재의 중심에 농업인이 있다는 얘기다.
이 땅의 농업인들은 희생의 역사를 안고 있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 많은 양보를 통해 한국경제의 기초를 닦아준 게 이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위축된 농업인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농업과 농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할 때다. 이 땅의 5천200만 국민의 안전하고 풍성한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농업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농협 역할에 대한 기대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은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나 농업인은 생산에만 전념하고 농협이 모든 물량을 팔아주겠다는 판매농협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다행히 지난해 1월 취임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농축산물 유통혁신을 기치로 ‘올바른유통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동시에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한 스마트한 농축산물생산과 유통환경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유통단계와 고비용 구조 등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농업인이 농축산물을 제값에 팔고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는 올바른 유통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농업·농촌자원 등을 활용해 국민의 심리 치료를 도모하는 ‘치유농업’이란 색다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농업과 농촌이 단순히 먹을거리의 생산기지가 아니라 우리 삶의 긍정적 정서를 만들어내는 공간임을 확인한 것이다.
농협은 지난해 기록적인 장마와 태풍, 코로나19 등 유례없는 재해 발생 시 공적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국민이 농협을 다시 보았다고 한다. 원활한 공적마스크 공급과 농축산물 소비 촉진 분위기 조성, 대대적인 농촌 일손 돕기 활동과 취약계층 지원 등은 농협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다.
농협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2만 임직원은 새로운 100년 농협의 기틀을 위해 피나는 노력의 역사를 재현해 주길 바란다. 도전과 혁신은 시대의 소명이자, 230만 농업인의 든든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로 힘든 우리 국민이 농업의 기능에 다시 주목하고, 농촌의 너른 품에서 마음껏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시대의 비전과 꿈인 ‘함께하는 100년 농협’과 더불어 농업이 대우받고 농업인이 존경받는 시대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박해진 前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