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왕자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얼마 전 봄맞이 청소하다가 발견한 아기 수첩. 1993년도 이야기이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두 발바닥 사진을 보는 순간 필자의 눈가가 이미 촉촉하게 젖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함과 감사함이 어우러진 묘한 감정이다.
임신 2개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냄새만으로도 화장실로 향한다. 현기증에 팔다리까지 쑤신다. 죽조차 토한다.’
임신 5개월 태몽을 꾸었다. 산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크고 시커먼 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힘들고 지친 나를 업고 쏜살같이 날아가듯 달려 똥통 속으로 함께 빠진 꿈.
아기를 향한 간절한 기도문도 있다. ‘많은 사랑을 베풀 줄 알며 지혜를 활용하여 총명함을 떨치는 겸손한 아이로 정의에 앞장서며 불의하고도 타협하는 신세대를 이끄는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엄마의 사랑을 담아 엄마도 노력하겠다고.
11월29일 아기가 태어난 날이다. 붉은빛이 도는 아기의 피부, 머리는 새카맣고 구레나룻이 있으며 코는 오뚝하다. 눈은 뜨지 못해도 눈의 길이가 길다. 귀는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 손톱과 발톱은 길어서 잘라 줘야겠다. 배꼽 옆에 푸른 점이 있다. 몸에는 솜털이 뽀송뽀송 신기하게 나 있다. 아주 작지만, 외모만으로는 사람 맞다.
하루하루 써 내려가던 아기에 대한 일기장. ‘사랑스럽다기보다 너무 작아 만지기가 겁난다. 잠만 자는 아기 그런데 신기하게 배고프면 운다. 생리현상이 일어났다며 운다. 그 외엔 새근새근 진짜 신기하다.’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 이게 얼마 만인가?’ ‘오늘은 혼자 섰다. 계속해서 부르며 한 발 내딛기를 바라며 계속 불렀다. 넘어지면 안쓰럽지만, 그보다 한발 한발 걷는데 너무 행복하다.’ 공, 차, 물 단어 하나 가지고도 소통이 된다. 놀랍다. 사람이 성장하는 게 신비롭다.
돌아다니며 노느라 밥을 거부한다. 한참 실랑이를 하며 밥을 먹인다. 이러다가 식사란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내가 제대로 식탁에 앉아 대우받으며 힘 들이지 않고 먹으면 행복할 것 같다.
힘들고 지치다가도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를 보고 나를 찾고 나를… 내가 뭐라고… 그랬구나! 그 산부인과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됐다. 필자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커버렸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이 생겼고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이런 세대가 흘러 또 다른 세대를 구성하는 것이 인간사(人間事)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당연함을 자꾸 망각하는 우리에게 가수 이적이 ‘당연한 것들’이라며 노래를 들려준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당연히 돌아올 거라고 당연히’.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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